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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前 서울기술연구원장
'은하철도 999'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철이와 메텔의 러브라인을 중심으로 철도와 우주, 은하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돌이켜보면 철이와 메텔은 인조인간, 즉 로봇이며, 그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인공지능(AI)이다. 만화에서 출발한 이야기이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과학기술의 설계자 역할을 한 것은 종종 만화가나 공상가들이었다. 1980년초의 상상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직 로봇에게 감정을 부여하지는 못했다. 이는 기술 진화의 여지가 여전히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대통령 후보들은 모두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토론도 이루어졌다. 필자 역시 과거 연구원장 재임 시절, AI 산업 육성을 위한 전략을 주제로 1년간 매주 스터디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뚜렷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해온 방식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AI 기업들에 창업 공간을 저렴하게 혹은 무상으로 제공하고, 1~2년간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기간이 끝난 후 다른 자금에 의존하며 연명하는 '좀비기업'을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3공화국 시절 제조업을 육성하던 방식이나 정보기술(IT)기업 지원 정책과는 달라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둘째, 창업 기업이나 중소기업 위주로만 지원하는 정책이다. “정부가 대기업을 지원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논리가 있지만, 모태펀드와 같은 간접 투자 방식은 영화나 드라마 등 외주 중심 산업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AI처럼 대규모 자본과 인력, 지속적인 연구개발(R&D)이 필요한 분야에는 효과적이지 않다. 챗GPT나 딥시크 같은 글로벌 선도 기업을 따라잡기는커녕 접근조차 어렵다. '나눠먹기'와 '먹튀' 같은 전통적인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셋째, AI 인재 양성을 대학 중심으로만 추진하는 방식이다. 현재 대학에는 가르칠 교수도 부족하지만 석박사 과정을 거쳐 실무 투입까지는 7~8년이 소요된다. 공학박사, 연구원 등에게 1~2년간 집중 재교육 과정을 제공하는 실용적인 접근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넷째, 컴퓨터나 데이터 전공 등 이공계 중심의 인재 양성은 한계를 보인다. '로봇 태권 V'나 '은하철도 999'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를 설계하고 방향을 잡는 데는 인문사회적 기반이 필수적이다. 특히 수요 분석과 같은 영역에는 인문학적 통찰이 중요하다. 중국이 빠른 시간에 AI에도 성공한 것은 '삼국지'를 비롯한 풍부한 아날로그적 토양에 바탕을 둔다. 게다가 현재의 이공계 박사들은 R&D 예산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 AI 산업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경우도 많다.
다섯째, 융합교육 및 융합연구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재설계가 필요하다. 사업 기획자나 예산 담당자들이 융합에 대한 이해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 시작점이다. 설사 사업이 잘 설계되었다 하더라도, 심사 단계에서 구조적 카르텔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여섯째, 장비 중심의 투자 방식이다. 슈퍼컴퓨터나 GPU 등 하드웨어 확보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타당하지만, 이미 구매해놓고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장비가 많다는 현실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실질적인 성과보다 외형적 과시에 중점을 두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라이즈(RISE)나 연구개발 사업에서는 AI 도입이 활발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들도 과거의 방식, 즉 '한때의 유행'처럼 접근해서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는커녕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조차 되기 어려울 수 있다. 미국식 모델을 따라야 할지, 중국식 전략이 더 적절한지, 아니면 절충형 한국 모델을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만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가장 심각할 수 있다.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前 서울기술연구원장
<원문출처>
전자신문 https://www.etnews.com/2025061100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