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의 한반도 투시경] 북녘의 대동강 얼음장 밑에도 봄이 스미는가.jpg [채성준의 한반도 투시경] 북녘의 대동강 얼음장 밑에도 봄이 스미는가.jpg](https://www.skuniv.ac.kr/files/attach/images/81/013/272/80779d4d4001fa4b5881e12a7d783d04.jpg)
▲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안보전략연구소장
북한은 1972년 이후 공산주의 대신 주체사상을 채택해 김일성 왕조 체제를 구축했다. 199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하면서 서문을 신설해 김일성을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 로 추앙하고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한 것이다.
냉전 종식과 함께 북한은 소련 및 동유럽의 사회주의 몰락, 지속된 경제 위기와 국제적 고립 등의 악재를 맞이했다. 이와 함께 남·북한의 국력 격차 심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 등 대내외 환경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정일·김정은에 이르기까지 세계 공산주의 역사상 유례 없는 3대 세습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절대 권력의 유지 기반은 철저한 정적 숙청과 충성 경쟁이다. 김일성은 광복 당시 33세의 소련군 대위에 불과했지만, 1949년 9월9일 북한 정권이 수립되면서 소련의 지원으로 초대 북한 수상에 올랐다. 그리고 8월 종파 사건(1956년), 갑산파 숙청 사건(1967년) 등을 통해 정적들을 제거하고 최고지도자로 등극했다.
김정일은 1970년 후계자로 공식화된 이후 1980년대에 실질적 2인자가 되는 과정에서 숙부 김영주와 이복형제 김평일을 비롯해 경쟁자나 정치적 반대 세력을 모두 없앴다. 김정은 역시 김정일 사후에 리영호와 장성택, 현영철과 최태복 등을 숙청하면서 당과 군부를 장악했다.
북한은 당과 군부 외에도 사회 통제기구로 사회안전성과 국가보위성을 두고 있다. 사회안전성은 우리의 경찰과 비슷하며, 국가보위성은 북한 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첩기관 겸 비밀경찰이다. 핵심적인 충성 집단으로 정찰총국도 있다. 북한은 노동당 산하에 대외연락부·작전부·통일전선부·35호실과 인민군 정찰국을 두고 대남 사업 및 해외 정보활동을 수행해 왔다. 그러다가 2009년 2월 당시 국방위원회 산하에 정찰총국을 신설해 이를 통폐합시켰다. 이들 모두 국무위원장인 김정은의 직속 기관이다.
그러나 영원한 권력은 없고 3대를 넘어가는 부자는 드물다. 요즘 김정은의 수행단이 단출해졌다. 수행을 도맡았던 고위 간부들이 몇 달 사이 연이어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추면서다.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김정은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조용원 당 조직비서다. 숙청인지 혁명화 교육 중인지 혹은 단순한 징계인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정권 안정기로 평가되는 집권 14년 차에도 엘리트들의 경쟁과 ‘상호 검열’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권력 재편이 이뤄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북한의 충성 집단에도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 평양시 고위급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정찰총국 군관 20여 명이 러시아 파병 명령에 의문을 표했다가 조사를 받고 가족과 함께 정치범 수용소로 이송됐다고 한다. 북한 내 엘리트조차 병사들을 사지로 모는 파병에 반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북한 당국은 이를 ‘전사적 자세 미흡’ 사례로 규정하며 정신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는 내부 불만이 ‘개별적’인 게 아니라 확산 가능성이 있는 ‘조직적’ 동요로 판단했다는 증좌다. 핵심 체제 유지 기관의 충성심마저 의심하면서 공포정치의 수위를 끌어올리려는 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이 여전히 초강력 억압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단기간 내 체제 붕괴 가능성은 희박하다. 철저한 정보 차단과 감시 체계, 공포정치와 숙청의 반복, 강력한 가족 연좌제 등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그만큼 내부 결속에 확신이 없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러한 통제 수단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겠지만 반복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사실 지도자 1인에 대한 충성만으로 유지되는 체제는 장기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현재 체제 자체의 불안 요인과 함께 러시아 파병 등에 따른 민심 동요로 엘리트층의 갈등과 군부의 불만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같은 흐름은 권력 집중 강화, 숙청 확대, 체제 피로 누적이라는 전형적 악순환 구조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일련의 조짐은 아직 ‘잠재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체제 균열’의 신호이다. 희망고문일지라도 3대에 걸친 동토의 왕국에 균열이 생기고, 북녘땅 대동강 얼음장 밑으로 봄이 올지 자못 궁금하다.
<원문출처>
스카이데일리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274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