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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칼럼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작가 윤석남[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1).jpg

불이 켜지며 작가가 등장한다. 스케치북을 꺼내 드로잉을 하고 무채색 풍경에 분홍 색연필로 달을 채운다. 달은 여성을 상징하지만, 그 달을 채운 색깔은 통상 우리가 귀엽고 부드러운 여성을 떠올리는 핑크색이 아니다. 불안한 회색 속에서 피어나는 핑크빛. 나는 ‘여성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듯한 핑크색 달에 끌렸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첫째 날인 1일 ‘코리안 시네마’ 부문에 초청된 ‘핑크문 Pink Moon’의 첫 상영을 봤다. 올해 여든여섯이 된 미술작가 윤석남의 삶과 예술을 그의 조카 윤한석 감독이 따스한 시선으로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나는 헤어졌던 옛 친구와 재회한 것처럼 반가웠다.

영화는 언니, 주부, 예술가, 동지, 친구, 페미니스트, 엄마 등 주변 사람들과 어우러진 윤석남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냈다. 1979년 4월, 마흔의 가정주부였던 윤석남은 생활비를 털어 화구를 구입해 그림을 시작했다. 다소 늦은 출발이었지만 의기투합한 친구들과 작업을 이어갔고, 1980년 여성주의 동인 ‘또 하나의 문화’에 합류하면서 억압받아 온 여성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가 페미니즘 작가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 후 경계를 뛰어넘어 오늘까지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칼럼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작가 윤석남[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2).jpg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나는 윤석남의 작품을 1990년대 초 처음 만났다. 자른 나무에 그려진 한복 차림의 어머니를 봤을 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려진 사람이 원래 나무 속에 있었고,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정관념에 함몰돼 있던 나를 부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때 이후로 그의 작품을 찾아다니며 봤다. 작품은 볼 때마다 새로웠고, 늘 나를 놀라게 했다. 특히 1995년부터 선보인 ‘핑크룸’ 연작에 이르러서는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그의 강한 메시지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그 감동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때쯤 아쉽게도 나는 여러 사정으로 미술 작업을 이어가지 못하게 됐고, 살아가는 데 바빠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통해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가웠고, 작품 속 스토리도 읽게 돼 이해가 깊어졌다.

글을 준비하면서 지난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윤석남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자신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무척 기뻐하면서 전주영화제에 참석했고, 젊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특히 가족 이야기와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과정을 많이 들려줬다. 내게 질문도 하는 등 마치 이모와 대화하듯 시간을 보내 인터뷰가 즐거웠다.

마침 어버이날이라 세 송이의 카네이션을 가져갔는데 그는 꽃을 유리병에 꽂아 아버지 윤백남 선생의 사진 옆에 놓았다. 그러곤 “아버지가 좋아하시겠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예전엔 그의 작품을 통해 윤석남을 날카로운 이미지로만 상상했다. 그러나 실제의 그는 온화했다. 솔직하고 소탈하며 부드러운 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정년이 되면 다시 작품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작업실에 관해 세세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또 나의 옛 작품을 보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작은 방이라도 괜찮으니 반드시 작업실이 필요해요. 아주 작은 공간에서라도 다시 시작하세요. 꼭 할 수 있어요”라고 몇 번이나 격려했다. 인터뷰하러 가서 격려를 받고 오다니. 백만대군의 힘을 얻은 기분이었다. 윤석남은 이번 기회를 통해 내 인생의 멘토가 돼 준 셈이다.

윤 감독은 “윤석남 선생님의 가장 큰 매력은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는 분이라는 점이다. 예술가로서의 태도나 철학이 특정 작품 안에만 머물지 않고, 삶 전체를 통해 실천돼 왔다는 점에서 깊이 감동받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작품의 매력에 대해 “단지 작품의 주제나 메시지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메시지를 믿고, 끝까지 실천해 나가는 단단한 태도다. 선생님은 ‘변화를 요구하는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시는 분이고, 그 삶 자체가 한 편의 예술처럼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나도 만나 보니 그 말이 실감 나고 작가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닮고 싶어졌다.

나는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닷새 동안 10여 편의 작품을 봤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길 나눴다. 내년 영화제가 시작하면 또 어떤 작품들과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아직 멀었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그전에 영화 ‘핑크문’이 개봉하게 된다면 또다시 극장을 찾아야지. 많은 분이 이 작품을 함께 봤으면 좋겠다.

<원문출처>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50513/1315989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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