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서경대학교 겸임교수
문재인 대통령처럼 인복(人福)이 박했던 분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도보다리 회담’으로 출발은 화려했다. 고난은 곧바로 찾아왔다. 깊이 신임했던 조국 전 법무장관이 발목을 잡았다. 수렁에서 건져 중용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재임 기간 내내 괴롭혔다. 그 바람에 대통령의 개혁 프로그램이 엉키고 말았다.
그뿐 아니다. 정권 평가의 의미를 갖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김상조 정책실장과 박주민 의원의 ‘일탈’이 불거지면서 패착 국면에 확인도장을 찍은 꼴이 됐다.
정책도 그렇다. 검찰 개혁은 검찰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선한 의도로 시작됐다고 믿는다. 허나 검찰 힘 빼기와 길들이기라는 결과만 낳았다고 본다. ‘코로나 방역 모범국’이라는 평가에 힘입어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정책에서 파열음이 나면서 정권 신뢰도는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정책 실패는 분명 문 대통령 자신의 실패지만 들여다보면 역시 용인(用人)의 실패였다. ‘사람이 먼저’라고 외쳤던 문 대통령에게는 ‘사람이 문제’였던 셈이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4권』에 나오는 얘기다. 위왕(魏王)은 조(趙)를 치고 싶어 했다. 신하 계량(季梁)이 간한다.
“북쪽으로 가는 마차를 탄 노인을 만났습니다. 초(楚)로 간다고 하더군요. ‘초로 간다며 왜 북으로 가시오?’ 했더니 ‘내 말은 빠르다오.’ 하더군요. ‘말이 빨라도 그렇지, 이 길은 초로 가는 길이 아니오’했더니 ‘길양식이 충분하니까요’ 하더군요. ‘그래도 아니라니까’ 했더니 ‘마부가 마치를 빨리 몹니다’라고 하더군요. 방향이 틀리면 빨리 달릴수록 목적지에서 더 멀어지는데도 말입니다. 지금 대왕 모습이 꼭 이 노인과 같습니다. 대왕은 늘 천하 제패를 꿈꿉니다. 천하를 얻으려면 먼저 천하인의 신임을 얻어야 합니다. 지금 대왕은 나라가 부강하고 군대가 용맹하다는 것만 믿고 이웃 나라를 공격해 땅만 넓히려고 합니다. 이럴수록 천하통일의 목표는 점점 더 멀어지니, 초로 간다면서 북으로만 달리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남원북철(南轅北轍)’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수레 끌채는 남쪽을 향하는데 바퀴는 북쪽으로 간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의 형편을 이처럼 적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하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가 되고 말았다. 젊은이들이 등을 돌리는 지금의 상황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야당 의원들이 김어준의 고가 출연료 문제를 제기했다. 출연료 같은 지엽말단 아닌, ‘공영방송인 교통방송이 특정 진영 논리만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게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어야 마땅했다.
여당 의원들은 더 한심했다. “김어준이 천재성을 갖췄기 때문에 그 정도의 출연료는 당연하다”며 청취율 1위를 그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제시했다. 그리곤 “김어준은 라디오 방송계의 MVP 투수다. 출연료가 안 높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라는 사족까지 달았다. 문 대통령의 인복(人福)이 이 정도다.
미디어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역사적 퇴보이고, 노무현 정신의 훼손이다. 이게 ‘김어준 뉴스 공장’이 지닌 문제의 본질 아닌가?
이런 형편에서는 남은 1년의 정권 관리가 쉽지 않다. 국민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있다. 뭔가를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는 거다. 무리수를 두지 않아야 큰 피해를 피할 수 있다. 마음에서 힘을 빼시길 문 대통령께 권한다.
<원문출처>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6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