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서경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겸임교수
1980년대 초, ‘땡전(全) 뉴스’라는 말이 유행했다. 저녁 9시 뉴스를 알리는 시보(時報)가 끝나자마자 코를 들이밀 듯 대통령 동정 뉴스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비슷한 풍경이 지금 중국에서 진행 중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얘기다. 중국은 공산당의 일당 독재 국가다. 그래도 시 주석의 경우엔 도를 넘었다. 공산 중국을 세운 마오쩌뚱(毛澤東)을 넘어설 정도다.
마오쩌뚱 사후 중국 공산당은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권력의 1인 집중으로 인한 폐해를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둘째, 중국이 워낙 크기 때문에 최고 지도자 1인이 모든 분야를 효과적으로 관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 주석은 달랐다. 우선 명칭부터 바꿨다. 과거에는 당 중앙위원회를 ‘당중앙(黨中央)’이라고만 불렀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모든 매체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이라고 길게 늘여 부른다. 당 중앙위원 중에서 선출되는, 최고 권력 집단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이 신문 1면에 등장할 때도 시 주석 사진만 압도적으로 크게 실린다. 마오(毛)의 시대에도 없었던 일이다.
시 주석도 집권 초기에는 담백했다. 2018년 4월 10일, 중국 보아오(博?)에서 열린 『보아오 아시아 논단 2018』 개막식에서 시 주석은, 중국 인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고문(古文) 정치’를 선보였다.
먼저 ‘천도수근(天道酬勤), 춘화추실(春華秋實)’을 얘기했다. 천도수근은 서경(書經) 대고(大誥)편에 보인다. ‘하늘은 인간에게 은밀하게 성공의 길을 보이셨으니 이는 오로지 근면함으로만 보람을 얻는다는 것이라(天?毖我成功,天亦惟用勤毖我民)’ 춘화추실의 ‘화(華)’는 꽃(花)과 통한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결실을 맺는다(春天?花,秋天??)는 뜻이다. 두 구절은 결국 같은 의미다. 땀 흘려 일하면 공정한 대가가 주어진다는 얘기다.
다음은 ‘천행유상(天行有常) 응지이치즉길(應之以治?吉)’이다. 순자(荀子) 천론(天論)에 나오는 말이다. ‘천지의 운행에는 변치 않는 규칙이 있다. 이 규칙에 순응해 다스리는 자는 길할 것이요, 이를 거스르면 흉할 것이다’라는 의미다. 중국 정치 평론가들은 “인민위천(人民爲天), 즉 국민이 하늘이라는 정치 철학을 표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끝으로 ‘적토이위산, 적수이위해(?土而?山,?水而?海)’다. 순자 유효(儒效)편의 구절이다. 인민 모두가 하나로 합쳐야 거친 외세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다는 주문이다. 인민의 단결을 위해 정부가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각오를 표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세 구절을 한 줄로 꿰면 ‘경제적으로 공평하고→ 정치적으로 공정하면→ 국민들이 한데 뭉치게 되고→ 결국 어떤 국난도 이겨낼 수 있다’로 요약된다.
이랬던 시 주석이 실패했다. 춘절(春節-설날) 경기를 걱정하고,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두려워해 코로나19에 대한 초기 대응을 덮는 순간, 시 주석의 ‘인민위천’의 꿈은 날아갔다.
우리 대통령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조국, 윤석열, 원전(原電) 등으로 이리저리 갈라진 국가를 이대로 둔 채 청와대를 떠날 순 없는 일이다. 시 주석이 인용한 고문을 정독하기를 대통령께 권한다. 분열을 메우고, 최소한의 화합을 이뤄낼 길이 보일 것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는, 그가 말한 나라를 보고 싶다.
‘대통령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원문출처>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6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