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0.01%의 사람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99.99%의 사람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고급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는 사람의 비율은 1만 명에 1명 꼴인 0.01% 보다 작은 경우도 흔하지만 편의상 1%와 99%라고 하자.
“국내 모 연구소에서 XXX-001이라는 신물질이 개발되었는데 암에 매우 좋은 신약소재이다.”라고기사를 마무리하거나 “국내 모 기업에서 ‘얼굴빛나’라는 새로운 화장품이 개발되었는데 피부에 아주 좋다고 한다.”라고 기사가 나오면 어떨까? 이 기사에는 정확한 정보의 전달은 없고, 모 연구소와 모 기업에 대한 홍보만 있을 뿐이다.
의학전문기자 제도가 있다. 의학관련 지식이 적은 대다수 국민들의 알권리와 생명과 관련된 정보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의사 출신 기자들이 99% 국민들의 입장에서 1% 의료전문가가 제시하는 보도자료를 판단하고, 일반인들이 묻기 어려운 핵심 질문을 통해 새로이 발생하는 의료지식의 옥석과 명암을 가리는 일을 한다.
도입 초기에는 정착될 것인지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의학전문기자 출신 파워유튜버도 등장하여 컨텐츠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의학전문기자를 따로 확보할 재원이 없는 매체의 경우 의료관련기사에 대한 판단을 대신해주는 전문위원을 두기도 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압전특성이 있는 플라스틱이 있다. 압전특성이란 전압과 물리적 변형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소재로 전압을 주면 변형이 일어나고, 변형을 일으키면 전기적인 흐름을 유발하는 소재를 말한다. 1%는 알고 99%는 모른다.
가청주파수 내에서 전압을 주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재를 개발한 다국적 대기업의 매뉴얼에는 압전 특성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크게 대단한 현상이 아니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멋져 보인다.
이런 소재로 스피커를 만든 업체들이 있었다. LCD 특정 층에 적용해 모니터 화면 전체를 스피커로 쓸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일본 소니 제품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전혀 소니에서 생산된 것 같지 않은 필름형 스피커를 직접 사서 데스크탑 PC 양 옆에 두고 사용한 적도 있다.
문제는 한 가지 크기, 한 가지 소재만으로 다양한 소리를 내는 스피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넓다란 진동면이 낮은 진동수의 소리는 무리 없이 내지만, 고음에서 진동수가 높아지면 필름이 높은 진동수를 수용하지 못하여 버들잎 풀피리처럼 필름 떨리는 소리가 났다.
스피커를 설계하거나, 좋아하는 1%의 사람은 알고 있는 사실이고, 다른 99%의 사람은 모르는 사실이다.
1%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갈등하게 된다. 1%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단하지 않지만 99% 일반인에게는 환상적인 아이템이다. 1% 전문가들은 금방 인지할 수 있는 태생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99%의 일반인은 그런 문제가 있으리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1% x 1%의 전문가만 알고 있는 지식과 문제점을 감추면 기사도 나가고 투자도 몰리고 국가지원도 받는다. 그것을 사실대로 말하면 차기 기술개발마저도 어려워진다. 국가과제든 기업과제든 펀드로 먹고 사는 연구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할 때 연구자의 연구가 지속되게 보호해주는 장치가 없으면 대부분의 연구자는 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오래 전, 유리 위에 다결정상 실리콘을 코팅하는 기술을 개발한 학자가 단결정 실리콘만 반도체 공정에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대면적으로 반도체 기판에 적용될 수 있는 실리콘 제조 공정을 개발했다고 언론에 공개했다.
학계와 산업계에서 반론이 제기되었고, 반도체 칩 제조공정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기술로 판명됐다.
반도체 소자에는 실리콘 단결정만 사용된다는 것을 모르고 언론 발표를 했다기 보다는 언론이 반도체 소자에 실리콘 단결정만 사용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알기에 빚어진 해프닝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반도체 분야는 어떨까?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 매우 좋은 상태다.
연구자가 지금 보도자료를 내고 있는 소재나 공정이 정확히 어느 반도체 공정, 어떤 소자를 만들기 위해 쓰이는지 모르고 있다.
그래도 반도체 소재 국산화나 일본을 능가하는 기술개발이라고 보도자료를 내면 99%에 속하는 기자님들이 오실 것이다. 1%는 자기 일 하느라 바쁠 테니 날카로운 반박은 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유명세를 타면 여러 과제 수주에 도움이 되고, 명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런 기술에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고, 미래의 과학계를 짊어질 대학원생들의 시간이 쓰이면 국가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을 능가하는 좋은 반도체 소재, 공정이 개발되었다고 하면 “반도체 소재면 어떤 메모리칩, 논리칩 어디에 쓰이는 소재입니까? 아니면 어떤 공정입니까?” 묻고 그에 대해 속 시원하게 지체 없이 대답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옳다.
아니, 그렇게 묻기 전에 두루뭉술하게 반도체 장비와 부품에 필수적이라고 쓰지 말고 보도자료 내용의 1%를 할애해서 ‘메모리 소자의 xxx 공정에 적용되며, 반도체 기술개발 로드맵 상 2021년에 적용될 특정 공정에 사용되는’ 이라고 적시해야 옳다.
아니면 국가에서도 수 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부분인 만큼 반도체 전문 기자·전문 위원 제도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반도체 회사 퇴직하신 분들 중에 세계적 고수인 분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무한경쟁 사회에 살면서 남들과는 다른 지식, 남들과는 다른 기회를 누려야 부를 축적하고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고 교육되었다. 그리고 그런 혜택은 적절히 정보를 감춤으로써 달성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어떤 분야든 1%의 전문가 집단은 나머지 99%에게 자신의 지식과 진실을 열어 주어야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사회가 된다.
비단 이것은 기술자 집단이나 교육자 집단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이 무엇인지 밝혀지고 나면 결국 진실을 감춘 쪽이 쓸모없는 존재로 스러지게 된다.
1%의 진실을 알고 있는 언론도 99%의 국민들을 위해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원문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