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은 종교 용어다. 범문(梵文) 타파스(Tapas)에서 왔다. 힌두교는 고행을 통해 신의 축복을 얻고, 해탈에 이른다고 본다. 불교는 고행에 유보적이다. 쾌락과 금욕의 양극단을 걷어 낸, 중도를 권면한다. 자이나교는 업(業·Karma)을 씻고 다른 업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고행을 택한다. 이슬람 경전 쿠란은 물질 향유를 경계하고 금생(今生)보다 내생(來生)을 중시한다. 일부 종파는 이를 근거로 고행을 강조한다.
고행은 대개 혼자 행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孤行(고행)으로 쓰기도 한다. 孤行은 동한(東漢) 천문학자 장형(張衡)의 『사현부(思玄賦)』에 처음 보인다. “혼자 걸어가는 고독함이여/홀로 쓸쓸하게 서 있네(何孤行之茕茕兮,孑不群而介立).”
죽음을 앞둔 한 노인의 모습을, 이 노인이 홀로 키운 손자가 묘사한 글이다. 孤行의 출발점은 효(孝)였던 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孤行 이미지는 당대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이다.
“산마다 새 그치고/길마다 인적 끊겼다/고독한 배 위 삿갓 노인/홀로 낚는다/시린 강 눈발을(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 孤舟蓑笠翁,獨釣寒江雪).” 요즘 사용되는 孤行은 독단(獨斷)의 뜻이 강하다. 일의고행(一意孤行)으로도 쓴다. 중국 문인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은 “본래부터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孤行己意) 오만한 자”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정부의 외교 정책을 놓고 걱정들이 많다.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 관계는 험악하다.
중·일은 밀월관계다. 중국 해군창설 70주년 기념식에 아베 총리는 욱일기(旭日旗)를 단 호위함을 참가시켰다. 시진핑 주석은 다음달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회의에 참석한다. 지난해 10월에는 아베 총리가 중국을 공식 방문하고 30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과 20조원 규모의 경제협력에 합의했다. 아베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교제에도 열심이다. 북·중·러시아는 전통적 3각 연대를 강화하는 중이다.
반면 우리는 고행(孤行)이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도, 남북 정상회담도, 한·일 정상회담도, 시 주석 방한도 모두 안갯속이다. 고행(孤行)은 고행(苦行)이다.
진세근 서경대 겸임교수 및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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