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화 예일미용고 교장
40여 년째 미용 일을 해오며 충북 청주지역 미용계에서
'대모(代母)'로 불리는 여성이 '미용예술학 박사'가 됐다.
홍도화(56·사진) 청주 예일미용고 교장이 그 사람이다.
홍씨는 최근 서경대 학위수여식에서 국내 처음으로 배출된
미용예술학 박사 6명 중 '최고령'으로 박사모를 썼다. 논문
제목은 '미용장 자격제도 및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다.
홍씨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미용실을 운영했던 이모집 일을 돕기
시작했다. 방송통신고를 나와 1974년 미용사자격증을 땄고
5년 후 청주시에 미용실을 차렸다.
40여 년째 미용 일을 해오며 충북 청주지역 미용계에서
'대모(代母)'로 불리는 여성이 '미용예술학 박사'가 됐다.
홍도화(56·사진) 청주 예일미용고 교장이 그 사람이다.
홍씨는 최근 서경대 학위수여식에서 국내 처음으로 배출된
미용예술학 박사 6명 중 '최고령'으로 박사모를 썼다. 논문
제목은 '미용장 자격제도 및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다.
홍씨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미용실을 운영했던 이모집 일을 돕기
시작했다. 방송통신고를 나와 1974년 미용사자격증을 땄고
5년 후 청주시에 미용실을 차렸다.
그는 미용사로 일하면서도 주경야독을 계속해 4개 대학을
거치며 공부했다. 1988년 미용산업기사 자격을 딴 데 이어
1993년엔 국내 최초의 '미용장(美容匠)'이 됐고, 국내 최초의
미용학 석사학위도 취득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다.
그런 홍씨에게도 박사학위를 딴다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었다. 낮에는 종일 서서 일하고 밤에는 논문을 쓰다 보면 하루 2~3시간밖에 잠을 못 자기 일쑤였다. 그는 "영어와 컴퓨터 사용이 특히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밤새 컴퓨터로 작업한 내용을 실수로 모두 날리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미용장협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미용기술로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활발한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다. 그는 30여 년간 청주지역 고아원·양로원을 찾아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으며, 1990년부터는 청주여자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미용기술을 가르쳐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자까지 배출했다.
조선일보 2008. 2. 18
거치며 공부했다. 1988년 미용산업기사 자격을 딴 데 이어
1993년엔 국내 최초의 '미용장(美容匠)'이 됐고, 국내 최초의
미용학 석사학위도 취득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다.
그런 홍씨에게도 박사학위를 딴다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었다. 낮에는 종일 서서 일하고 밤에는 논문을 쓰다 보면 하루 2~3시간밖에 잠을 못 자기 일쑤였다. 그는 "영어와 컴퓨터 사용이 특히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밤새 컴퓨터로 작업한 내용을 실수로 모두 날리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미용장협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미용기술로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활발한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다. 그는 30여 년간 청주지역 고아원·양로원을 찾아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으며, 1990년부터는 청주여자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미용기술을 가르쳐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자까지 배출했다.
조선일보 2008.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