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Today
서경광장 > 서경 TODAY
서경대학교의
새로운 소식과 이벤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권재욱 서경대 특임교수.jpg

바람이 분다. 맑은 바람이 분다. 회색빛 먼지를 밀어 내고 솜털 같은 구름 한자락 동무 삼아, 몸 가벼웁게 바람이 분다. 뜨거운 햇볕을 견뎌내며 타 들어간 속내는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는데, 때가 되니 바람이 분다.

 

바람이 거니는 물가, 흔들리는 억새꽃이 빈약한 아내의 흰 머리카락인 양 서러운데 철 없는 사내는 울긋불긋 등산복에 으악새를 노래한다. 가늘어진 햇살이 솔잎으로 빗어내린 바람은 소녀의 단발머리처럼 정갈하게 찰랑인다. 산들선들 다가선 바람에 옹색했던 마음이 열린다.

 

어디서 오는 바람인지 궁금하고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알고 싶다. 신비주의자인 바람에게 확실한 것은 똑 같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닿는 곳마다 다르며 때마다 변한다. 그는 마냥 믿을 수는 없으나 어쩔 수 없이 끌리는 나쁜 남자를 닮았다. 염소 새끼 뛰노니는 듯 예측이 안되며 가을날 고추잠자리처럼 종잡을 수 없다. 변덕스럽고 때로는 쉽게 몸을 맡기지만 태풍처럼 아주 화가 많이 난 경우를 제외하면 가까이 할 만하다. 가까이 할 만한 정도가 아니라 의뭉스럽고 매력적이기도 하다. 누구는 민심이 그렇다고 한다.

 

구름은 바람과 더불어 흐르고, 단풍은 바람에 실리어 낭만을 즐긴다. 바람의 장단에 맞추어 물결은 춤추며, 풀잎은 바람 따라 눕고 바람 따라 일어 난다. ’바람 부는 대로, 물 흐르듯이‘, 슬몃 떨어져 내리는 낙엽처럼 홀연히 떨치고 나선 걸음, 이것을 풍류(風流)라 한다.

 

풍류는 선비의 덕목이다. 풍류를 모르는 사람은 선비 축에 끼지 못했다. 시화(詩畫)를 기본으로 삼고 가무를 즐겼으며, 언행은 신중하되 거침이 없고, 온화함과 은근함이 소탈한 생활 속에 녹아 있었다. 거지 꼴의 이몽룡과 김삿갓이 그랬듯 밥 한 술, 술 한 잔 얻어 먹을 때도 시 한 수쯤은 지어 건네며 받았고, 이방원과 정몽주의 고사처럼, 죽이기로 작정한 정적에게도 술 한잔 대접하며, 간절한 의중을 시 한 수에 담아 설득할 줄 알았다. 올곧고 순수한 정신, 절제 가운데 낭만 가득한 여유, 무엇보다 걸림이 없는 표표함이 풍류의 진면목이다.

 

풍류를 아는 이는 만남의 약속조차 예사롭지 않다. 다산 정약용은 마음 맞는 벗들과 죽란시사(竹欄詩社)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모임 날짜를 정한 규약이 이러하다. “새해 첫 모임은 살구꽃이 필 때로 하고, 다음 모임은 복사꽃이 필 때와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갖기로 하며, 초가을 서늘할 때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을 위해, 그리고 국화가 피면 한 번 모이고, 겨울철 큰 눈이 내리면 다시 만나며, 세모에 화분의 매화가 피면 모인다.” 세상에 이보다 더 로맨틱한 만남이 또 있을까? 낭만과 아취를 나눔이 풍류의 진수임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여럿이서 어울려야만 재미가 아니다. 주위에 보는 이 없이 혼자일 때 선비다움이 빛을 발하듯, 풍류도 홀로임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데서 깊은 맛이 살아난다. 그저 자신의 뜻에 맞아 흡족하면 그만이다.

 

홀로 거문고를 타고/ 홀로 잔을 들어 마시네/ 거문고 소리 이미 내 귀를 거스르지 않고/ 술 또한 내 입술 거스르지 않으니/ 어찌 꼭 지음(知音)을 기다릴 거며/ 함께 마실 술벗 또한 기다릴 것 없노라/ 내 뜻에 맞으면 즐겁다는 말(適意則爲歡)/ 이 말을 나는 가지려 하네(此言吾必取)” 고려의 대학자 이규보의 <적의(適意)>는 가히 풍류에 대한 절창이라 할 만하다. ’내 뜻에 맞는 것이 중요하며 선비가 취할 심경(心境)이라는 말이다. 은 비와 이슬로 가꾼 마음밭의 알곡이며 꾸밈 없는 진정이다.

 

은 내 발과 같다. 내 뜻에 맞지 않는 일은 내 발에 맞지 않는 신발처럼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값비싼 신발이라고 자신의 발에 맞지도 않는 것을 무리하게 신으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 내면의 뜻을 거스른 허세와 과욕의 슬픈 자화상이다.

 

자신의 뜻과 맞지 않은 일에는 으레 수상한 장난이 끼어 든다. 치밀하나 음흉한 수작이 주위를 어지럽히고 거짓과 불신으로 오염시킨다. 맑고 푸른 하늘을 흐려 놓는다. 이런 수상한 장난은 일찍이 보아 왔듯이 오래 가지 못한다. 회오리 바람처럼 곧 지나간다. 다만, 이렇게 혼탁해진 하늘엔 한 바탕 큰 바람이 필요하다. 바람이 불어 오는 곳, 그곳에는 무심한 듯 무서운 생명의 기운이 있다. 어린아이의 첫 숨결, 청춘의 정의로운 열정, 시민들의 깨어있는 의식 같은 것. 큰 바람이 이 기운을 빌어 도처에 괴어 있는 탁한 찌꺼기를 말끔히 쓸어낼지라.

 

바람이 분다.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눈을 감고 느껴 보라. 가슴을 열고 안아 보라. 회복과 재생의 숨결이다. 햇살을 가늠하고 이슬을 부르며 공기를 바꾸어 새로운 기운을 불러 온다. 바람이 불어 오는 곳, 맑은 기운이 움터는 곳, 그 곳으로 가자.

 

<원문출처>

e대한경제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109291703591750755

List of Articles
Lis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칼럼: 요절한 남편 평생 사랑, 이중섭의 아내[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file 홍보실 2022-10-07 49847

[2021 서경대 캠퍼스타운 스타트업 CEO] Extra Wall을 활용해 전시 기획하는 ‘오픈월’ file

반수경 오픈월 대표(지역활성화 프로젝트 정릉스쿨) 오픈월은 ‘추가의 벽(Extra Wall)’을 활용해 전시를 기획하는 스타트업이다. 반수경 대표(28)가 2021년 1월 설립했다. 반 대표는 이 아이템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

[2021 서경대 캠퍼스타운 스타트업 CEO] 어린이를 위한 놀이 명상 교구 만드는 ‘웰마인드’ file

송은주 웰마인드 대표 웰마인드는 어린이를 위한 심리 건강 교구 및 수업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송은주 대표(34)가 2021년 6월 대학원 동기 두 명인 윤수지(35), 최수현(33) 공동 창업자와 함께 설립했다. 이들은 ...

[2021 서경대 캠퍼스타운 스타트업 CEO] 저글링 배우며 환경 공부하는 콘텐츠 만드는 ‘점퍼즈’ file

강승우 점퍼즈 대표 점퍼즈는 에듀테인먼트 콘텐츠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강승우 대표(37)가 2021년 1월 설립했다. 강 대표는 “점퍼즈는 ‘사람을 가치 있게, 일상을 즐겁게, 세상을 아름답게’ 라는 미션으로 에듀테인먼트 ...

[2021 서경대 캠퍼스타운 스타트업 CEO] 사람들의 이야기 모아 전시회 개최한 ‘정릉1동 주민자치회’ file

선종욱 정릉1동 주민자치회 교육분과위원장(지역활성화 프로젝트 정릉스쿨) 2020년 12월 주민자치법이 개편되면서 서울 시내에는 주민자치회가 잇따라 생겼다. 정릉1동 주민자치회도 2021년에 시작됐다. 성북구에는 정릉1동을 포함해 ...

[2021 서경대 캠퍼스타운 스타트업 CEO] 정릉시장 소식지 발간해 상인들과 소통하는 ‘정릉시장협동조합’ file

유형곤 같이가치 정릉시장협동조합 대표(지역활성화 프로젝트 정릉스쿨) 같이가치 정릉시장협동조합은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상인들이 가입한 비영리 단체다. 15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퇴사 후 고향인 정릉시장에서 7년째 작은 세탁소...

[2021 서경대 캠퍼스타운 스타트업 CEO] AI 고양이 장난감을 만드는 스타트업 ‘캣코’ file

강희원 캣코 대표 캣코는 인공지능(AI) 고양이 장난감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강희원 대표(53)가 2020년 12월에 설립했다. 강 대표는 “캣코는 고양이와 고양이를 키우는 애묘인들에게 행복함을 주는 기업”이라고 소개했다. 캣...

[2021 서경대 캠퍼스타운 스타트업 CEO] 정릉 문화 알리미 기자단 운영하는 ‘콘팩’ file

이훈희 콘팩 대표(지역활성화 프로젝트 정릉스쿨) ‘콘팩’은 문화예술 기반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기업이다. 이훈희 대표(52)가 2012년에 설립했다. 주식회사 콘팩은 ‘콘텐츠 팩토리’의 줄임말로 언론매체 운영, 문화예술 ...

[2021 서경대 캠퍼스타운 스타트업 CEO] 건축으로 아동·청소년 교육하는 기업 ‘플레이빌드’ file

심응석 플레이빌드 대표 플레이빌드(Playbuild)는 아동·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심응석 대표(41)가 2015년 8월에 설립했다. 플레이빌드가 교육하는 분야는 건축이다. 심 대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건축을 ...

[2021 서경대 캠퍼스타운 스타트업 CEO] 스포츠 경기 자동 촬영 시스템 개발하는 ‘플레이카니발’ file

강성모 플레이카니발 대표 플레이카니발은 스포츠 경기 자동 촬영 시스템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강성모 대표(26)가 2020년 5월에 설립했다. 플레이카니발은 현재 축구 종목인 ‘풋살’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많...

[2021 서경대 캠퍼스타운 스타트업 CEO] 작품 온라인 포트폴리오 만들어 주는 서비스 ‘필디’ file

신동윤 필디 대표 필디는 디자이너들의 작업 프로젝트를 온라인에 업로드하는 플랫폼을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신동윤 대표(31)가 2017년에 설립했다. 신 대표는 “필디는 오프라인에 머물러 있는 포트폴리오를 온라인화해 언제든 선...

Today
서경광장 > 서경 TODAY
서경대학교의
새로운 소식과 이벤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