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Today
서경광장 > 서경 TODAY
서경대학교의
새로운 소식과 이벤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권재욱 서경대 특임교수.jpg

가을엔 편지를 쓰고, 오월엔 시를 읽는다.

 

오월엔 따로 시를 쓸 필요가 없다. 내가 보는 신록과 그대가 보는 꽃들이 서로의 그리움을 대신 전하는데 구태여 무딘 필치로 끄적거릴 이유가 없다.

 

편지는 외로워야 잘 씌어지고 시는 온유함과 잘 어울린다. 깊이 있는 산문은 가을에 씌어졌고, 가슴을 적시는 시는 봄날을 노래했다. 스산한 바람에 달빛이 고요히 찾아들면 누군가에게 편지라도 쓰지 않으면 몸살 날 것 같은 가을밤과 달리, 향긋한 내음 뜰에 가득한 오월엔 예쁜 시를 읽는다.

 

애써 시집을 찾을 필요도 없다. 도처에 시가 널려 있다. 산과 들, 가지에 매달린 연둣빛 새순과 길섶의 풀잎, 이팝나무의 하이얀 꽃잎, 그 각각이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아닌가. 풀잎과 들꽃이 전하는 언어는 해독할 수고없이 오롯이 가슴에 젖어든다.

 

오월의 시인은 참 힘들었을 게다.

 

저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서정을 노래하고 있는 자연보다 더 나은 시를 쓰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럼에도 많은 시인들이 숱한 시를 적어 냈으니, 이는 오기인가, 치기인가, 아니면 스스로 미치지 못할 줄 알면서도 춘심을 주체하지 못해 부끄러움을 감추고 슬몃 몇자 적어 본 것인가?

 

월트 휘트먼. 우리의 작가 이효석이 인류가 예수 다음으로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이름이라며 극찬한 그도, 그의 첫시집 <풀잎>을 내면서 표지에 이름을 감추고 출판 연도와 장소만 올렸던 이유도 이것이었나?

 

대지와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 / 자유롭게 살면서 그대 생애의 모든 해, 모든 계절, 산과 들에 있는 이 나뭇잎들을 음미하라/ 학교, 교회, 책에서 배운 모든 것을 의심하라...” 휘트먼은 <풀잎>의 서문에서 흡사 선지자처럼 외쳤다.

 

풀잎이 뭐예요?/... / 내게 그것은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짜여진 깃발이다/ 아니면 그것은 하느님의 손수건이라 생각한다/ 향기로운 선물이자 일부러 떨어뜨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휘트먼의 시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딩 선생이 학생들에게 낭독해 주어 더욱 유명해졌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게 아니냐.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거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경제, 법률, 기술 같은 건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지. 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 그리고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오월은 사랑이다. 싱그러운 잎사귀에, 자색빛 모란 송이송이에, 어머니 야윈 가슴에 꽂혀 있는 카네이션에 사랑이 배어 있다. 어머니는 젊은 느티나무 신록의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었고, 봄을 탔던 누나는 모윤숙의 렌의 애가(哀歌)’로 밤을 새웠다. 그 시절 청춘의 연애편지에는 비슷비슷한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거의가 렌의 애가에서 따온 것들이었다. “밤이 깊었는데 나는 홀로 작은 책상을 마주 앉아 밤을 새웁니다.” 로 편지는 시작한다. 한낮에 쓰는 편지인데도. 그리고는 램프가 피곤한 듯 좁니다. 이제 창을 닫습니다. 오늘 밤 그대를 생각함으로 어두운 밤 행복으로 지냈습니다. 날이 오래지 않아 밝아 올테니 아름다운 수면으로 이 밤과 작별하소서.”로 맺음한다. 그런 오글거리는 글귀에 가슴 설레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청춘들은 그런 클리셰를 참지 못한다. 최소한 이 정도는 나와주어야 입에 담을까 말까다.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박성룡 시인이 가르쳐 준대로 풀잎’, ‘풀잎하고 불러 본다. 정말 휘파람 소리가 난다. 다시 우리가 풀잎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돼버린다.

 

싱그러운 풀잎은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휘파람은 들리지 않고 격한 소음만 거리를 메운다. 라일락 야한 향기가 굳은 이성을 흐트려뜨려도 옹이 같은 가슴은 풀릴 줄 모르고 입술은 거짓과 허세를 만트라(Mantra)인 양 되뇌인다. 아름다움을 빼고나면 모든 것이 껍질이다. 풀잎에 얹힌 아침이슬이 보석보다 귀하며, 속마음 들킨 시 한 편이 윤슬처럼 지혜를 반사한다. 오월은 그것을 흠뻑 취하기에 딱 좋다. 지금보다 가진 것 없고 자랑할 일도 없던 궁색했던 그 시절에도 마음은 따뜻했고 눈빛은 맑았다. 우리가 자연과의 공감을 잃어버리자 사람에 대한 연민도 잊어버렸다. 우울은 언제나 자연과의 거리에서 비롯된다.

 

자연이 쓴 아름다운 시어(詩語)가 향기롭다. 풀잎. 나뭇가지마다 달린 눈록(嫩綠)의 어린잎새들. 하얗게 저며오는 아카시아 향기. 오월의 귀한 선물 앞에서 무엇이 달라져 있길래 나는 이토록 안쓰러운가? 그래도 오월이다.

 

<원문출처>

e대한경제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104291705463160546

List of Articles
Lis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칼럼: 요절한 남편 평생 사랑, 이중섭의 아내[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file 홍보실 2022-10-07 52712

세종대왕납시오! 세종문화예술상 file

이재익 서경대 교수 미술교육부문 수상 종즉위600주년,한글반포572돌을 맞아 서울시와 (사)한국지역산업문화협회가 주최한 세종대왕납시오! 세종문화예술상이 선정됐습니다. 세종으뜸한국인부문에는 방탄소년단이 선정됐습니다. 전세계 k-...

서경대학교, 「2021년 인생나눔교실」 인생삼모작 인생나눔학교 ‘성과공유회’ 성료 file

12월 21일(화) 온라인 비대면으로 진행 《올해도 한 걸음, 참 멋진 당신》 주제로 3개 프로그램 진행, 올 한해 마무리하는 시간 가져 서경대학교(총장 최영철) 문화예술센터(센터장 한정섭 교수)가 12월 21일(화) ZOOM 플랫...

한국광기술원, 메타버스 환경 광고·커머스 지원 실시간 객체 인식 솔루션 개발 file

한국광기술원(원장 신용진)은 전성국 공간광정보연구센터 박사팀이 김명하 서경대 교수, 영상기술 전문업체 카이(대표 김영휘) 등과 공동으로 환경에서 광고와 실시간 상거래서비스가 가능한 실시간 객체 인식 솔루션을 개발했다고 29일...

평창올림픽 메이크업 팀 ‘종로한복사랑캠페인’ 재능기부 file

[한강타임즈 윤종철 기자]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행사에서 헤어ㆍ메이크업을 담당했던 팀이 우리 전통 문화를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알리고 있는 ‘종로한복사랑캠페인’에 재능기부로 동참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4일 종...

[진세근 서경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칼럼]경마만 한다고? 천만에! 하이난다오(海南島)의 환골탈태 file

2001년 3월까지만 해도 하이난(海南)은 중국 남단의 한갓진 섬나라에 불과했다. 화산 지대여서 온천이 풍부한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평지가 많고 물가가 싼 덕분에 골프장이 곳곳에 들어섰다. 골프장과 온천이 있는 곳에 빠지지 ...

서경대, 국내 대학 최초로 ‘서경커뮤니케이션센터’ 설립, 운영 file

학생· 교수·교직원 외에 동문·지역사회 대표 등도 참여 대학 운영 및 발전 모색 서경대학교(총장 최영철)가 국내 대학 최초로 대학 구성원 간의 소통과 참여를 통한 민주적이고 창의적이며 협력적인 대학 운영을 위한 ‘서...

서경대학교의 자치기구 알아보기  file

서경대학교 내에는 학교의 발전과 학생들의 보다 나은 학교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자치기구가 있다. 총학생회, 학생복지위원회, 동아리총연합회, 졸업준비위원회, 서경신문사 등이 그것. 이들 자치기구는 학생들의 자치활동에서부터 시작...

서경대학교 무용예술학과 이성욱 학생, ‘제6회 평화통일 전국무용경연대회’ 대상(통일부 장관상) 수상 file

서경대학교는 무용예술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성욱 학생이 지난 3월 14일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공연장에서 열린 ‘제6회 평화통일 전국무용경연대회’에서 대상인 통일부 장관상을 수상했다고 15일 밝혔다. 이성욱 학생은 규정부...

‘서경대학교 청년문화콘텐츠기획단X성북TV’의 성북구 알리기 프로젝트 ‘성북구에서 살아남기’ 시리즈 네 번째 영상 ‘성북구 보문동편’ 성북구청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돼 ‘큰 인기’ file

서경대학교 청년문화콘텐츠기획단 유튜브 영상 '성북구 보문동편' 스틸컷(1) 서경대학교 청년문화콘텐츠기획단(이하 청문단, 운영위원장 방미영 광고홍보콘텐츠학과 교수)이 어느덧 네번째 성북구 공식 유튜브 영상을 업로드했다. 해...

서경인 인터뷰: 코로나 19, 경기침체 속 취업에 성공한 우효재 학우(산업경영시스템공학과 14학번, 2020년 하반기 CJ 대한통운 취업) file

청년실업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코로나 19의 확산 및 장기화로 취업의 문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서경대학교 산업경영시스템공학과의 우효재 학우(14학번)는 지난 2020년 하반기, CJ 대한통운 입사에...

Today
서경광장 > 서경 TODAY
서경대학교의
새로운 소식과 이벤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