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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신학기가 시작됐다. 나는 대학에서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매년 1학년 일본전공 강의실에서는 ‘아이우에오(あいうえお)’부터 시작한다. 알다시피 ‘아이우에오’는 한국어의 ‘가나다’에 해당하는 일본어 학습의 첫걸음이다. 어학은 문자 쓰기, 읽기, 발음하기, 리듬을 몸에 익히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직 쌀쌀한 강의실에서 ‘아이우에오’라는 내 목소리에 힘차게 따라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반짝반짝 빛나는 1학년 학생들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박찬욱 감독의 작품 ‘아가씨’(2016년)가 생각났다. 특히 당시 신인이었던 김태리 배우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신입생들과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일본어 대사 번역과 배우들의 일본어 지도를 담당했다. 촬영 시작 6개월 전인 2015년 1월부터 일본어 교육은 시작됐다. 기초교육, 대사교육, 그리고 영상과 일본어 대사의 확인, 후시(後時)녹음까지 포함해 작업들은 상영 직전까지 이어졌다.

박 감독과의 작업은 마치 실험과 같았다. 일본어 네이티브가 아닌 한국인 배우에게 일본인 또는 일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말하게끔 연기를 시키는 것이었다. ‘아가씨’의 일본어 대사는 1930년대의 것으로 현대 일본인도 사용하지 않는 난해하고 고풍적인 것이었다. 대부분 처음 일본어를 학습하는 배우에게 네이티브 수준의 일본어 대사를 익히게 한다는 것은 ‘극한직업’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어디까지 리얼리티를 끌어올릴 수 있는지가 승부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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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감독에게 내가 주장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일대일로 개인지도를 해야 한다. 둘째, 일본어 대사가 있는 모든 배우를 지도해야 한다. 셋째, 가능한 한 ‘아이우에오’를 익히고, 한국어 발음을 쓰지 않으며, (모국어의 간섭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히라가나 표기로 대사를 써 읽게 한다. 넷째, 배우에 따라 어려운 발음이 있으면 그에게 맞춰 일본어 대사를 다소 수정한다.

한국인에게 일본어는 배우기 쉬운 언어다. 일본어와 한국어의 어순이 같고, 공통된 한자어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하기에 차이를 인식하기 어렵고 방심하기 쉽다. 발음에 한국어에는 없는 ‘악센트’와 ‘박(拍)’이 있기 때문이다. ‘박’이란 ‘음절 한 개의 길이에 해당하는 시간적 단위’다. 예를 들어 ‘토쿄(東京)’는 2박이 아니라 4박 ‘토오쿄오’이고, 장음의 현상이 일어나 ‘토∼쿄∼’가 된다. ‘오사카(大阪)’도 3박이 아니라 ‘오∼사카’의 4박이 된다. 영화 대사에서는 특히 박 수가 중요하다. 음성은 후시녹음으로 수정할 수 있는데, 이때 박이 맞지 않으면 입 모양과 대사가 맞지 않아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아가씨’에서는 시나리오의 일본어 대사에 박과 악센트를 표기했다. 감정에 열중하면 박이 흐트러져서 되풀이하며 지도했다. 어디가 어떻게 틀린지를 묻는 배우에게 잘 설명하지 못해 진땀을 흘린 적도 많았다.

감각적으로 대사를 인지하는 하정우 배우와 김민희 배우,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조진웅 배우, 어학 소질이 뛰어난 김태리 배우는 타고났다는 느낌이었다. 일본어를 아는 문소리 배우는 원문 호흡에 맞춰 함께 의논하며 일본어 대사를 수정하기도 했다. 김해숙 배우는 직전에 일본어 대사가 바뀌어도 전혀 흔들림이 없어 연기자로서의 기개에 압도당했다.

한국에서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일본어 대사가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 내수용으로 제작된 작품에서는 주연급이 아니라면 일본인 역할이어도 일본어가 너무 서툴러 보기 힘든 경우가 있어 유감스러웠다.

물론 ‘아가씨’의 일본어가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모국어의 간섭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고, 일본인에게는 다소 이질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배우들도 스태프도 피나는 노력을 해 국제적인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확실하다.

‘아가씨’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박 감독의 자세,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스태프, 최고를 지향하는 현장에서 배운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는 학생들에게 오늘도 자세하고 철저하게 지도한다. 발음도 꽤 까다롭게 가르치고 있다. 내게 있어 교단도, 영화 제작 현장도 전쟁터처럼 치열하다. ‘아가씨’에서 얻은 경험과 에너지는 지금도 교육현장에서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원문 출처>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190319/946216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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