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열 경영학부 교수: [전규열 칼럼] '칩플레이션' 경고, 반도체가 서민 물가 흔든다
‘산업의 쌀’ 반도체, 경제 전반 물가를 끌어올리다
고유가·고환율 겹친 삼중고…청년·저소득층 타격 심화
수출은 늘었지만 체감 경기는 악화…IT 제품 가격 줄인상
반도체 호황의 역설, 기술은 발전하는데 물가는 오른다

“최근 전역을 앞둔 서울의 20대 중반 김 모 씨는 노트북을 사기 위해 용산 전자상가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연초 대비 최신 노트북 가격이 20~30%나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1~2년 전 모델을 살지, 중고 제품을 구매할지 고민에 빠졌다.
과거 기술 발전은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생산 공정이 혁신되면 제품 가격이 떨어지는 ‘기술 디플레이션’이 일반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상식이 깨지는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인공지능(AI) 혁명이 촉발한 반도체 수요 폭증이 오히려 물가 상승을 부르는 ‘칩플레이션(Chipflation)’ 시대를 열고 있다.
칩플레이션은 반도체(Chip)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반도체 가격 상승이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넘어 경제 전반의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디지털 경제로 전환되면서 반도체는 모든 제품의 원가를 좌우하는 ‘산업의 쌀’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제품 가격도 함께 오른다.
최근 칩플레이션의 핵심 원인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이다. 생성형 AI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같은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폭증했다.
문제는 공급 구조의 왜곡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이 수익성이 높은 HBM 생산에 집중하면서, 일반 소비자용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수요는 유지되거나 증가하는데 공급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1년 사이 D램 가격은 8배 이상 상승했고, IT 제품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과거 10%대에서 최근 30~40%까지 높아졌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완제품 가격 인상에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 수출 호황은 한국 경제에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올해 반도체 수출은 전체 수출의 37~40%를 차지하며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기업 실적도 크게 개선되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2.6%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소비자 체감 경기는 전혀 다르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완제품 가격으로 전가되면서 노트북, 스마트폰, 가전제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크게 올랐다. 지난해 200만 원 수준이던 고사양 노트북은 이제 300만~400만 원대를 넘어섰다.

더 큰 문제는 가격의 하방 경직성이다. 과거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 때 인상된 자동차 가격이 이후에도 내려오지 않았듯, 이번에도 반도체 수급이 안정되더라도 완제품 가격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을 장기간 압박할 수 있다.
칩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 불평등’도 심화시킨다. 최근에는 저가 생필품과 가공식품 가격 상승률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식비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고유가와 고환율까지 겹치면서 서민 경제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소비자물가는 두 달 연속 3%대를 기록했고, 중동전 여파로 석유류 가격은 전년 대비 24.7% 상승했다. 특히 컴퓨터 관련 물가는 1991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인 22.2%를 기록했다. 학업과 취업 준비에 필수적인 IT 기기 가격 상승은 청년층에게 직접적인 부담이 되고 있다.
반도체 호황은 분명 국가 경제에 축복이지만, 동시에 소비자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 발전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소비자는 합리적 소비를 통해 과도한 ‘가수요’를 경계해야 한다. 가격 상승에 대한 불안으로 불필요한 구매를 서두르면 오히려 시장 가격을 더 자극할 수 있다. 용도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고, 구형 모델이나 중고 시장을 활용하는 합리적 소비가 중요하다.
정부의 핀셋형 물가 안정 대책 및 지원이 시급하다. 중저가 IT 제품과 부품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을 검토하고, 저소득층과 학생을 위한 교육용 기기 지원을 확대해 디지털 격차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 역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들은 높은 수익을 협력사와 공유하고,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의 가격 안정에 기여하는 상생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칩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소비자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은 기술의 혜택이 특정 산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의 균형 있는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전규열
경영학 박사
폴리뉴스 편집국장 겸 부사장
국회입법지원위원
서경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KT스카이라이프 시청자위원(전)
중소벤처부 자문위원(전)
<저서>이것만 알면 경제 인싸 외 다수
<원문출처>
폴리뉴스 https://www.pol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6071(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