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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 2026 병오년, 소용돌이 치는 국제질서와 한국의 선택

↑↑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장, 안보전략연구소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장, 안보전략연구소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보름 후면 2025년 을사년이 저물고 2026년 병오년이 밝아온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병오년은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120년 전 1906년 병오년은 을사늑약 직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해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하면서 식민 지배를 본격화한 해였다. 60년 전 1966년 병오년에는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 체결 이후 일본의 경제협력 자금이 들어와 산업화의 토대가 닦이기 시작했다. 위기와 도약이 교차하는 병오년의 역사는 오늘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 한 해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어느 해 보다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속에서도 국가를 지탱해 온 국민적 저력은 약해지지 않았다. 다가오는 병오년은 2차대전 이후 유지돼 온 국제질서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는 국면에서, 한국이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점이다.

을사년이 푸른 뱀의 해였다면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로, 삼국지 관운장의 적토마가 떠오른다. 관운장은 무예와 충절의 상징이었지만 지나친 자신감이 교만으로 변질되어 형주(荊州)를 잃고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힘이 아니라 힘을 다루는 태도가 운명을 갈랐다는 점은 오늘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이다.

한국은 단 한 세대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한 드문 나라지만, 그 이면엔 성장 둔화, 인구 절벽, 안보 불확실성 등 구조적 위험이 누적되어 있다. 여기에 국제질서의 급속한 재편까지 더해지며 새해 한국이 직면할 외교·안보 환경은 한층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대외정책의 축은 ‘동맹 비용 재조정’과 ‘미국 우선주의의 제도화’다. 새해에도 동맹을 경제적 거래 대상으로 보는 기조가 지속될 것이며, 주한미군 규모 조정, 조건부 주둔, 전략무기 전개 비용 문제 등에서 우리가 직면할 압박이 현실적 과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한국 외교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구조적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대만해협·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에 ‘더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정치·경제 관계에 직접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으며, 우리의 전략적 공간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 변수는 더욱 중대하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개인적 외교 채널과 정상회담 추진을 강조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동맹국의 입장이 배제되고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가 묵인되는 ‘관리 부재 리스크’가 우려된다. 북한은 이미 고체연료 ICBM, 신형 SLBM, 전술핵탄두 소형화 등 핵전력의 질적 업그레이드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북·중·러의 밀착이 강화되면서 북한의 전략적 자신감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우선순위가 중동·유럽으로 이동하면서 한반도 관리 강도가 약화될 경우,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중 갈등 또한 구조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관세 재부과, 첨단기술 봉쇄 강화, ‘공급망 동맹’ 구축 등을 추진할 경우, 한국은 미국의 요구와 중국의 반발 사이에서 다시 한번 전략적 모호성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배터리, AI, 방산 등이 모두 미·중 경쟁의 중심에 있는 만큼, 경제 안보 전략 재편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충돌이 쉽게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국제 에너지·원자재 시장 변동성 역시 커지고, 유럽 주요국들까지 자국 중심주의로 회귀함에 따라 한국이 오랫동안 기대어 온 개방적 글로벌 질서도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

이런 대외 요인들이 한꺼번에 겹치며 2026년은 한국 외교·안보 전략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는 해가 될 전망이다. 외부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내부 갈등까지 심화된다면 관운장의 비극적 교훈이 오늘의 한국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고 전략적 대응을 한다면, 병오년은 위기를 넘어 다시 도약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원문출처>

경상매일신문 https://www.ksmnews.co.kr/news/view.php?idx=580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