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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열 서경대 경영학부 교수 칼럼: [전규열의 경제 INSIGHT] 우리 돈 원화가치, 왜 이렇게 힘을 잃었나?

일시적 감기 아닌 체력 저하 경고…경제 빨간불
금리역전 장기화·산업편중·정책불안정성이 원인
고환율, 물가 상승·금리 압박·공사비 상승 큰 부담

사진=연합뉴스 

최근 환율이 달러당 1,470원대 중반까지 오르며 원화 가치가 또다시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1,500원 돌파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환율이 오른다는 것은 우리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번 원화 약세가 단순히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체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진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원화의 실질구매력을 보여주는 실질실효환율은 16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보다 낮은 수준이다. 더 나아가 원화의 약세는 달러뿐 아니라 바트, 링깃 등 신흥국 통화와의 비교에서도 두드러진다. 시장 일각에서 ‘환율판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번에는 ‘달러 부족’이 아닌 ‘달러 유출’ 문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의 공통점은 ‘달러 부족’이었다. 단기 외채 상환 압력이 높은데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외화 유동성이 고갈됐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순대외금융자산은 당시보다 80배 이상 늘었고, 단기 외채비율도 안정적이다. 문제는 외환위기형 ‘급성질환’이 아니라, 구조적 ‘만성질환’에 가깝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달러가 해외로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말처럼, 지금의 환율은 ‘국내 거주자의 해외 투자’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외환시장의 불안은 구조적인 자본 유출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화 약세의 세 가지 구조적 요인

첫째, 금리 역전의 장기화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면서, 한‧미 금리 차가 1.5%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자금은 자연스럽게 더 높은 이자를 주는 곳으로 이동한다. 국민연금, 보험사, 개인투자자들까지 고수익을 찾아 해외로 자금을 옮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해외 투자 규모는 연 1,100억 달러에 육박해,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 흑자 규모와 맞먹는다.

둘째, 비기축통화국의 한계다. 미국 달러나 일본 엔화처럼 국제 결제에 쓰이는 돈을 가진 나라들은 투자 수익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며 환율 안정 효과를 얻는다. 그러나 원화는 그렇지 않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국내로 유입되지 않고 해외에 재투자되는 구조가 형성돼 있어, 원화 강세 복원력이 약하다.

셋째, 정책 불안정성과 산업 편중이다. 잦은 정책 변경은 투자자에게 불확실성을 키우고, 결과적으로 자금 이탈을 촉진한다. 내수 기반은 가계부채와 고령화로 위축되어 있고, 산업 구조는 반도체 등 특정 분야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 반도체 업황이나 미‧중 갈등이 흔들릴 때마다 원화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고환율이 불러오는 ‘3고(高)’의 압박

고환율은 국민 생활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생활비 부담을 늘린다. 최근 수입물가지수는 4개월 연속 상승했고, 수입 농축산물과 석유제품 가격이 눈에 띄게 올랐다. 건설 비용 역시 치솟는다.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환율 상승은 공사비 상승으로 직결된다. 지난 9월 건설공사비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는 아파트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졌다.

물가와 공사비가 오르면 금리 인하 가능성은 낮아지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다시 상승세를 보인다. 결국 ‘고환율-고공사비-고금리’라는 3고(高) 부담이 가계의 주거 환경을 압박한다.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PIR)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체질 개선 없이 원화도 없다. 원화 약세는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 약화를 반영한다. 단기적 시장 개입으로는 근본 처방이 될 수 없다. 속병 즉 내과적 문제를 외과적 처방인 피부 연고만 바르는 격이다. 필요한 것은 구조적 개혁이다.

재정 건전성 확보다. 재정적자를 GDP 대비 2~3% 수준으로 줄이고, 재정준칙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정책 예측 가능성 제고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명확하고 일관된 정책 신호를 통해 시장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경제 체질 개선이다. 원화 약세로 얻은 단기 수익을 기술 투자와 재무 구조조정에 재투자해 장기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외환시장 선진화다. 파생상품 시장 유동성을 확충하고, 해외 투자자의 원화 접근성을 높여 환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환율 안정을 위해서는 경제의 근본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달러 강세라는 외부 충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투자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성을 뒷받침하는 내실 있는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원화의 진정한 힘은 안정된 경제 체력에서 나온다.

<원문출처>

반론보도 https://www.banronbodo.com/news/articleView.html?idxno=31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