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채성준칼럼> 카이사르 '갈리아 원정기'의 교훈과 AI 시대의 프로파간다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학과장, 안보전략연구소장
↑↑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학과장, 안보전략연구소장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황제는 아니었지만 전쟁 영웅으로 권력을 잡아 황제처럼 군림하다가 정적들에게 암살당한 로마 공화정의 정치가였다. 카이사르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은 ‘갈리아 원정기’다. 한 사람과 제국의 운명을 바꾼 8년간의 전쟁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왜 자신이 갈리아 정복에 나서야 했으며 그로 인해 로마가 얻는 이익이 얼마나 큰지를 원로원과 시민들에게 알리려 한 일종의 보고서였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역사학자들은 이 ‘갈리아 원정기’가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선전물에 불과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정치적 정보 조작의 사례로 꼽히며, 현대 정치에서 난무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뿌리와 닿아 있다.
원래 ‘프로파간다’는 17세기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포교 활동을 담당한 기구의 명칭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그 의미는 ‘왜곡과 선동을 통한 여론 조작’으로 변질하였으며, 현대전에서도 여전히 적용된다. 특히 히틀러는 이를 정치적 무기로 삼아 독일 국민을 현혹하고,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패전 이후에야 자신들이 얼마나 철저히 속았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참화를 겪은 뒤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 역시 이 역사적 교훈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지금 정치권은 사실(fact)보다 이미지와 선동에 치중하고 있다. 대중을 설득하기보다는 자극적 언어와 편향된 정보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급급하고, 국가 운영에 필요한 책임과 비전은 뒷전이다. 외부 적을 향해야 할 총구가 내부로 돌려진 셈이다.
정치인들의 언행은 그 자체로 ‘현대판 갈리아 원정기’이자 히틀러의 프로파간다와 닮아있다.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대신, 자기 진영의 과오를 미화하고 불리한 사실은 축소하거나 은폐한다. 여기에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증폭 장치 역할을 하면서 국민 여론은 진영 논리에 따라 양극화된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과 정치 테러까지 난무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단계로 치닫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문제는 이러한 프로파간다가 정치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 시민들조차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확증편향’에 빠져 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정보 접근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가짜뉴스와 왜곡된 담론이 무차별적으로 확산하는 통로가 되었다.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필터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휘말리게 되면 집단지성이 설 자리가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이러한 문제를 증폭시킬 가능성이다. 이미 AI는 정치적 광고, 여론 분석, 이미지 조작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은 실제와 구분이 어려운 영상과 음성을 만들어내며, 특정 정치인을 음해하거나 허위 사실을 사실처럼 꾸밀 수 있게 한다. 과거에는 대중매체가 프로파간다의 매개체였다면, 오늘날에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AI는 대중의 감정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개인 맞춤형 선동 메시지를 제공할 수도 있다. 특정 유권자가 분노, 불안, 불만을 느끼는 지점을 정확히 파악해 그에 맞춘 정보만 노출한다면, 사회 전체가 보이지 않는 ‘여론의 조작’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결국 시민들은 자신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한다고 믿지만, 실상은 AI가 설계한 정보 환경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위협이다.
한국 사회가 이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사실 검증’과 ‘합리적 토론 문화’가 회복되어야 한다. 언론은 권력의 선전 도구가 아니라 감시자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국민 역시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비판적 주체로 서야 한다. 누가 히틀러와 같은 존재인지, 누가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를 재현하고 있는지를 분별하는 일, 그리고 AI라는 새로운 ‘프로파간다의 무기’를 통제할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온전히 시민사회의 몫이며 미래 세대를 위한 국민의 책무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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