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 [기고] 국내 암약하는 외국 스파이 잡아내는 실력이 곧 정보주권

최근 불거진 국정원발 한·미 정보 협력 불협화음을 둘러싼 논란에서 간과되고 있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정보기관의 움직임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가. 동시에 해외에서 우리 정보 요원의 활동이 제약받을 때 대응할 수단은 갖추고 있는가. 정보의 세계에서 동맹국은 협력 대상이면서 방첩 대상이기도 하다. 동맹국끼리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상대의 정책과 의도를 파악하는 독자적인 정보 활동을 벌인다.
2014년 독일 정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베를린 주재 책임자에게 출국을 요구했다. 독일 정보기관 내부에서 미국 측에 정보를 넘긴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도 미국의 방첩 체계를 경험했다. 1996년 미국 해군정보국에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은 주미 한국 해군 무관에게 기밀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처벌받았다. 2024년에는 전직 CIA 분석관 수미 테리가 한국 정보 요원과 접촉했다가 미등록 대리인으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됐다. 동맹 관계라고 해서 정보 활동에 대한 감시와 대응까지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1993년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이 군사 기밀을 입수해 주한 일본 대사관 무관에게 전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3년 공개된 미국 국가안보국(NSA) 기밀문서에는 한국의 외교 정책과 전략 기술이 정보 수집 대상으로 명시돼 있었다. 2023년에는 미국 기밀문건 유출로 한국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관계자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의혹이 불거졌다. 같은 해 중국군 정보기관 측이 우리 군 병사를 금품으로 포섭해 군사 정보를 빼내려 한 사건도 있었다. 정상적인 외교 접촉과 공개 정보 수집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국가 기밀을 탈취하거나 은밀히 인물을 포섭하는 등 불법적인 정보 활동은 다르다. 이를 조기에 탐지하고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외사 방첩의 핵심이다.
우리의 외사 방첩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국정원은 2017년 국내정보 담당 조직을 폐지했고, 2020년 국정원법 개정으로 직무 범위에서 ‘국내 보안정보’라는 표현도 삭제했다. 방첩 기능은 유지됐지만, 정보망과 전문성이 얼마나 보존됐는지는 점검해야 한다.
문제는 기존의 외사방첩 역량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군은 지난 7월 국군방첩사령부를 해체하면서 방첩정보는 국방방첩본부, 군사보안은 국방보안지원단, 안보수사는 국방부조사본부로 이관했다. 분산된 기관 간에 정보 공유와 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질지가 관건이다. 지난달 시행된 개정 형법은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 등’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국가기밀에 해당하지 않는 정보의 수집이나 인물 포섭 공작은 포괄하기 어렵고, 배후 국가와의 연계성을 입증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2018년 영국은 러시아의 전직 정보 요원 독살 시도 사건에 대응해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했고, 러시아도 영국 외교관 23명을 맞추방했다. 외국 정보기관의 활동을 파악하고 증거를 확보하는 능력은 국가 기밀 보호를 위해 중요할 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중요한 자산이다. 이는 동맹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보 협력은 강화하되 독자적인 방첩 역량도 갖춰야 한다. 상대의 움직임을 알지 못한 채 정보 주권을 온전히 지킬 수는 없다.
<원문출처>
조선일보 (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