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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열 경영학부 교수: [전규열의 경제 INSIGHT] 불확실성 시대, ‘성장 공식' 바꾼 美 스타트업들

美스타트업, AI·딥테크·여성·건강서 새로운 돌파구
AI 열풍, 인재부족·자본쏠림에 지속 가능 성장 모색
외형 확장서 가치 입증으로 전환…AI 불확실성 넘어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성장한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1990년대 말 닷컴 버블의 붕괴를 거치며 사업모델과 자본 배분의 기준을 재정립했다.

 

이후 미국은 벤처캐피털, 대학 연구기관, 대기업, 정부 조달시장이 결합한 세계 최대 규모의 창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최근 미국 스타트업들은 고금리와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도 성장 자체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다만 과거처럼 외형 확대와 기업가치 상승만을 추구하기보다는 매출, 생산성, 고객 확보 등 구체적인 사업성과를 입증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EY US가 2026년 미국의 연 매출 500만 달러 이상 기업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6%는 향후 1년의 최우선 과제로 성장을 꼽았다.

 

재무적 복원력은 33%, 수익성은 21%였다. 또한 88%는 향후 12개월 내 인력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결과는 미국 기업가들이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를 전면 중단하기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 자원을 선별적으로 투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와 딥테크 분야에서는 기업가치가 빠르게 상승한 유니콘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AI 전문 인력과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플랫폼 머코르(Mercor)는 지난해 10월 3억50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 10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머코르는 AI 모델의 훈련과 평가에 필요한 의사·변호사·컨설턴트 등 전문 인력을 연결하는 사업을 전개한다.

 

방산 분야에서는 안두릴 인더스트리(Anduril Industries)가 대표적이다. 팔머 러키가 설립한 안두릴은 자율 시스템과 인공지능을 방산 분야에 적용하는 기업으로, 올해 5월 50억 달러를 조달하면서 기업가치가 약 610억 달러로 평가됐다.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 머코르(채용)·안두릴인더스트리(방산)·피스컬노트(법률규제)·갤런그로스(건강)의 홈페이지

제조업과 물리적 산업을 겨냥한 AI 기업도 등장했다.

 

제프 베이조스와 비크 바자지가 공동 최고경영자를 맡은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Project Prometheus)는 지난해 출범 당시 62억 달러의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AI를 활용해 제조·공학 등 물리적 산업의 생산성과 설계 역량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법률·규제 기술 분야에서는 팀 황(Tim Hwang)이 공동 창업한 피스컬노트 (FiscalNote)가 있다.

 

피스컬노트는 법률·규제 정보를 분석하는 AI 기반 기업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팀 황은 이후 헬스케어 금융기술 기업 니트라를 공동 창업했고, 니트라는 지분과 부채를 포함해 6200만 달러를 조달했다.

 

이처럼 미국 스타트업의 성장 분야는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을 넘어 AI 데이터, 방산, 제조, 법률·규제, 헬스케어 등 산업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여성 건강 분야도 새로운 성장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Galen Growth는 여성에게 불균형하게 영향을 미치지만 충분히 투자받지 못한 시장 기회를 약 3600억 달러 규모의 ‘고스트 마켓’으로 설명한다. 2024년 펨테크 분야의 벤처투자액은 약 22억 달러로 집계됐지만, 여성 건강 분야의 시장 수요에 비하면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이다.

 

여성 건강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도 낮다. 한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여성 건강 기업이 직접 유치한 벤처투자액은 11억9000만 달러였으며, 전체 헬스케어 벤처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였다.

 

다만 이 수치는 여성 건강 기업을 어떻게 분류하고 전체 헬스케어 투자액을 어떻게 산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업 사례도 다양하다. 블루머 테크는 여성의 생리적 특성을 반영한 심전도 측정 웨어러블을 개발하고 있으며,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중소기업 혁신연구 프로그램 지원을 받았다.

 

오우라는 임신·생리 주기·폐경 전후 건강관리 기능을 확장하면서 여성 사용자 비중을 크게 높였다. 지난해는 9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해 기업가치 약 11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다만 여성 건강 분야의 기업가치, 사용자 구성, 투자 비중은 조사기관과 기준 시점에 따라 차이가 크다. 따라서 “여성 사용자를 60%로 전환했다”처럼 단정하기보다 “여성 사용자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다.

 

美 스타트업 생태계가 극복해야 할 과제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높은 성장성을 보이는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하다.

 

첫째는 인재 부족이다.

 

EY 조사에서 37%는 인재 확보를 성장의 주요 장벽으로 꼽았고, 46%는 인재와 전문성 부족을 AI 사업 확장의 장애물로 지목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더라도 이를 실제 제품과 서비스로 구현할 고숙련 인력이 부족하면 스케일업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둘째는 시장 수요와 자본 배분의 불일치다.

 

여성 건강처럼 소비자 수요와 사회적 필요가 큰 분야도 투자자의 관심이 충분하지 않으면 연구개발과 임상시험 단계에서 자금 부족에 직면한다. 특히 여성 건강 분야의 투자 비중 2.3%는 이 같은 불일치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다만 해당 수치가 전체 여성 건강 관련 기술과 의약품·의료기기 투자를 모두 포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셋째는 AI 투자에 대한 검증 압박이다.

 

AI 활용이 확산되면서 투자자는 기술 도입 여부보다 실제 사업 성과를 묻기 시작했다. 고객 확보, 매출 증가, 비용 절감, 업무 생산성 향상 등 명확한 투자수익률을 제시하지 못하는 AI 프로젝트는 투자와 지출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대응 전략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미국 스타트업의 대응 전략은

 

첫째, ‘의도적 성장’이다.

 

시장점유율과 인력 규모를 무조건 키우기보다 매출 성장과 운영 효율성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사업에 선별적으로 투자한다.

 

둘째, 전략적 파트너십의 확대다.

 

EY 조사에서 97%의 기업가는 외부 전략적 파트너십을 활용한다고 답했다. 모든 기술과 역량을 내부에서 개발하기보다 고객, 인재, 공급망, 기술을 보유한 외부 파트너와 협력해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다.

 

셋째, 인간과 AI의 협업을 전제로 한 조직 재설계다.

 

AI를 단순한 인력 감축 도구로 활용하기보다 반복 업무는 자동화하고, 인간은 판단·창의성·문제 해결과 같은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하도록 직무를 재설계해야 한다.

 

넷째, 성별 차이를 반영한 데이터와 임상 설계다.

 

여성 건강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려면 성별에 따른 생리적 차이를 연구와 제품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임상시험 단계에서부터 성별 데이터를 충분히 축적하고 분석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다섯째, 초기 창업을 넘어 스케일업을 지원하는 공공·민간 협력이다.

 

멘토링, 연구개발, 기술이전, 판로, 투자 네트워크를 하나로 연결해 창업기업이 매출과 고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돕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다만 ‘ScaleUp America’라는 프로그램 명칭은 현재 운영 주체와 사업 내용을 공식 자료로 재확인한 뒤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美 스타트업 사례들이 국내에 시사하는 교훈

 

미국 사례가 한국 스타트업에 주는 첫 번째 교훈은 AI 도입 자체가 경쟁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먼저 중요한 것은 AI를 활용해 고객의 비용을 얼마나 줄이고, 매출과 생산성을 얼마나 높였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두 번째는 모든 것을 자체 개발하려는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외부 기업, 대학, 연구기관, 대기업, 공공기관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부족한 자본과 인재를 보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인재 양성과 직무 재설계다. AI 시대에는 단순히 개발자를 늘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산업 현장을 이해하면서 AI를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를 키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건강, 방산, 제조 AI, 규제 기술과 같은 분야를 틈새시장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아직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성장 여지가 크다는 뜻이다. 다만 기술의 참신함보다 임상 근거, 규제 대응, 고객 확보, 반복 가능한 수익모델을 함께 갖추는 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의 조건이다.

<원문출처>

반론보도닷컴 https://www.banronbodo.com/news/articleView.html?idxno=33055(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