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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주 서경대 금융정보공학과 교수 칼럼: 재무상담은 환경을 설계하는 것

흔히 재무적 의사결정을 ‘지식’이나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투자에 실패하면 정보가 부족해서였다고 탓하고, 소비를 줄이지 못하면 의지가 약해서라고 자책하는 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충분한 정보를 가진 사람도 투자 과정에서 군중심리에 휩쓸리고,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도 충동구매의 유혹 앞에서 흔들린다. 문제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 생각보다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현상을 인간의 인지적 오류와 행동편향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심리적 편향의 영향을 받으며 소비하고, 저축하고, 투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재무상담의 역할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재무상담은 단순히 금융상품을 추천하거나 판매하는 과정이 아니다. 고객이 더 나은 재무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행동을 이해하고, 올바른 행동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과정에 가깝다. 즉, 재무상담은 사람들의 선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부드러운 개입’, 넛지(nudge)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소비와 투자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행동편향을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무상담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소비는 왜 자꾸 계획에서 벗어날까?
많은 사람이 소비 문제를 절제력의 문제로 생각한다. ‘안 살 수 있었는데’, ‘참았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하곤 한다. 하지만 소비는 생각보다 의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의 소비는 수많은 심리적 편향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SNS를 보다 보면 친구가 다녀온 해외여행이 부러워지고, 누군가 새로 산 가방이나 자동차가 눈에 들어온다. 원래는 관심도 없던 물건이 갑자기 갖고 싶어진다. 소비 욕구가 자신의 필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군중심리나 사회적 모방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이 가진 물건이나 경험을 보며 자신도 비슷한 욕구를 느끼도록 만드는 거울뉴런의 작용 역시 이러한 모방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충동소비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은 미래의 자신이 지금보다 더 절약할 것이라고 믿는다. ‘다음 달부터는 아껴야지’, ‘이번 달만 특별한 경우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현재의 만족을 미래의 이익보다 더 크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현재편향이라고 부른다. 은퇴준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저축보다 소비를 선택하고, 카드값 걱정을 하면서도 눈앞의 할인행사를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도 다 이 때문이다.

 

인지부조화에 의한 정당화소비도 많다. 인지부조화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어긋날 때 느끼는 심리적 불편함을 말한다. 가령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값비싼 물건을 충동적으로 사고 나면, ‘합리적으로 소비해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과 ‘계획에도 없던 지출을 해버렸다’는 실제 행동 사이에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사람은 이 불편함을 그냥 두지 못한다. 그래서 ‘오래 쓸 거니까 괜찮아’, ‘나한테 주는 선물이지’, ‘어차피 언젠간 살 물건이었어’ 등과 같은 이유를 붙여 자신의 소비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정당화가 확증편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구매 이후에는 해당 제품의 장점이나 긍정적인 후기만 찾아보고, 반대되는 정보는 자연스럽게 외면하게 된다.

 

이처럼 소비는 단순히 필요와 예산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소비를 보며 욕구를 느끼고, 현재의 만족을 미래의 이익보다 크게 평가하며, 이미 해버린 소비에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다. 그래서 계획적 소비는 생각보다 어렵다. 이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며, 단순히 의지력이 약해서 생기는 일도 아니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소비에서 온갖 행동편향이 드러나듯, 투자도 다르지 않다. 투자의 성패는 결국 심리를 다스리는 데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군중심리와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다. 시장에는 언제나 뜨거운 종목이 있다. 한때는 비트코인이었고, 또 한때는 2차전지였으며, 요즘은 인공지능(AI) 반도체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열기를 한참 지켜보다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 뒤늦게 올라탄다는 데 있다. ‘이러다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닐까’, ‘지금이라도 사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들기 시작하면, 냉정한 판단은 설 자리를 잃는다. 종목의 가치보다 남들의 움직임에 눈이 가고, 어느새 군중을 따라 함께 휩쓸리게 된다.

 

기준점 편향도 투자자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이다. 사람들은 머릿속에 특정 가격을 못 박아두고 거기에 기대어 판단을 내린다. 어떤 주식이 10만 원일 때 살까 말까 망설이다 매수를 미뤘다고 해보자. 이후 주가가 12만 원, 15만 원으로 올라도 투자자의 기준은 여전히 10만 원에 묶여 있다. ‘너무 많이 올랐어’, ‘조금만 떨어지면 사야지’ 하며 기다리지만, 주가는 좀처럼 내 마음 같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그 10만 원이라는 숫자가 시장의 적정가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투자자가 마음속에 찍어둔 점일 뿐이다.

 

손실회피편향 역시 투자에서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사람은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에서 더 큰 심리적 고통을 느낀다. 이에 투자자들은 수익이 발생한 종목은 서둘러 매도하면서도 손실이 발생한 종목은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본전은 되겠지’, ‘손실만 회복되면 팔아야지’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버틴다. 반대로 수익이 난 종목은 수익이 사라질까 두려워 너무 일찍 처분해 버린다. 그 결과 작은 이익과 큰 손실이 반복되는 비합리적인 투자행동이 반복된다.

 

자기과신편향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의 판단력과 투자 실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몇 번의 성공적인 투자 경험은 ‘내가 시장을 읽을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낸다. 이에 시장을 예측하려 하고, 매매 타이밍을 맞추려 한다. 하지만 시장은 누구도 꾸준히 예측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자신감은 불필요한 매매를 늘리고 과도한 위험 추구로 이어지기 쉽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실력을 가장 확신하는 투자자의 성과가 평균을 하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투자 역시 냉정한 분석과 정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군중을 따라 움직이고, 스스로 만든 기준점에 묶여 판단하며, 손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다.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는 시장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원래 인간이 그렇다. 인간은 다양한 심리적 편향 속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라는 뜻이다.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는 일
지금까지 살펴본 소비와 투자의 편향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이 의지가 약한 일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은 원래 군중을 따라 움직이고, 현재의 만족을 앞세우며, 손실 앞에서 흔들리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그렇다면 해법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의 재무상담은 사람을 바꾸려 했다. 더 많은 정보를 알려주면, 의지를 다잡게 하면 합리적으로 행동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라면, 아무리 좋은 솔루션을 줘도 행동은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재무상담의 역할은 사람을 합리적으로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지가 없어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선택을 하게 되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다. 의지에 기대지 않고 구조에 기대는 것, 이것이 바로 넛지(nudge)다. 넛지는 강요가 아니다. 선택의 자유는 그대로 두되, 더 바람직한 선택을 하도록 부드럽게 유도하는 개입이다. 재무상담 역시 마찬가지다. 재무상담의 목적은 고객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정답에 가까운 행동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소비지출 관리에서 재무상담사가 해야 할 일은 고객에게 절약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소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급이 들어오면 생활비 통장을 별도로 만들고 한 달 동안 사용할 변동비만 옮겨두도록 제안할 수 있다. 여기에 체크카드를 연결하면 소비는 정해진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충동소비가 잦은 고객이라면 의지력을 강조하기보다 소비를 자극하는 환경과 거리를 두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쇼핑 앱 알림을 끄거나, SNS·홈쇼핑 노출을 줄이고, 소비를 유발하는 장소 방문을 줄이는 것 역시 효과적인 행동설계다. 저축과 투자 역시 의지에 맡기기보다 자동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무상담사는 고객이 남은 돈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저축할 돈을 먼저 떼어두고 남은 돈을 소비하도록 자동이체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또한 예상치 못한 지출로 인해 저축과 투자 계획이 무너지지 않도록 충분한 비상예비자금을 확보하도록 도와야 한다. 결국 재무상담의 역할은 고객이 매 순간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지력이 없어도 좋은 소비습관이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

 

투자에서도 재무상담의 역할은 고객에게 투자원칙을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원칙을 실제로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급일 점심시간마다 미리 정해둔 금액을 시장지수 ETF에 투자하도록 하거나, 연말정산 환급금은 곧바로 연금계좌(IRP·연금저축)에 추가 납입하도록 설정하는 것이다. 또한 급여가 인상될 경우 인상분의 일정 비율을 자동으로 연금계좌에 추가 투자하도록 미리 정해둘 수도 있다. 이러한 장치는 투자 여부를 매번 고민하게 하기보다 좋은 투자행동이 자연스럽게 반복되도록 만든다. 또한 투자원칙을 문서화하고 계좌 확인 빈도를 줄이도록 유도함으로써 군중심리, 포모(FOMO), 자기과신, 손실회피와 같은 행동편향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 결국 좋은 재무상담은 고객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올바른 행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환경과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재무상담은 금융상품을 파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 좋은 선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환경을 설계하는 일이다. 사람은 의지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환경은 바꿀 수 있고, 바뀐 환경은 행동을 바꾼다. 결심을 요구하기보다 결심이 필요 없는 구조를 만들고, 다그치기보다 자연스럽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 그것이 넛지다. 결국 재무상담의 가치는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행동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데 있다.

 

<원문출처>

FP저널 (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