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주요국 방첩 강화에 역주행하는 한국[포럼]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국군방첩사령부의 주요 기능이 국방방첩본부와 조사본부, 보안지원단 등으로 분산되거나 동향 조사 등 일부 기능은 폐지되면서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현재 인원 3000여 명 중 1000명 정도가 퇴출당할 처지라고 한다.
문제는 조직의 개편이 아니라 기능의 실효성이다. 방첩은 사건 발생 이후 범인을 추적하는 일반 범죄수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적의 공작을 사전에 탐지하고 차단해야 하며, 정보 수집과 분석, 감시와 조사, 수사가 유기적으로 연계될 때 비로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기능이 과도하게 분산되거나 기관 간 협조가 원활하지 못하면 그 틈은 곧 국가안보의 취약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안보 환경의 변화다. 오늘날의 방첩은 북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 정보기관들의 정보수집 활동과 산업기술 탈취, 사이버 공격, 영향력 공작은 이미 현실적 위협이다. 연구소와 대학, 방산업체와 첨단기업, 인터넷 공간과 SNS는 새로운 전장이 됐고, 군사기밀은 물론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방산기술 등 국가 핵심기술과 정책 정보, 나아가 사회 여론까지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주요국은 방첩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산업기술 탈취와 정보활동을 국가안보의 핵심 위협으로 규정하고, 연방수사국(FBI)의 방첩 조직과 인력을 계속 확대해 왔다. 영국 역시 보안국(MI5)을 중심으로 대학과 연구기관,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방첩 활동을 강화한다. 탈냉전 이후 한때 정보·방첩기관 축소 논의가 있었던 서방 국가들조차 정보전과 기술전쟁이 격화하면서 방첩 기능을 국가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재평가하는 추세다.
방첩의 실패는 단순히 간첩 한 명을 놓치는 문제가 아니다. 전시 작전계획과 군사기밀이 유출될 수 있고, 첨단 무기체계와 국가 핵심기술이 해외로 넘어갈 수도 있다. 사이버 공격이 국가 기반시설을 마비시키고, 영향력 공작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돼 안보수사의 중심축이 경찰로 넘어갈 당시에도 북한 간첩에 대한 무장해제나 다름없다는 우려 목소리가 많았다. 실제로 경찰의 대공수사 성과는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방첩의 핵심 축 중 하나인 방첩사마저 해체된다면 대한민국의 안보는 중대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정부와 군은 방첩사 기능을 분산한 이후에도 기존 수준의 방첩 역량이 유지될 수 있는지, 국방방첩본부·조사본부·보안지원단 간 협조 체계는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 국정원·경찰·군 간 정보 공유와 합동 대응 체계는 어떤 방식으로 보완할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준법감찰위원회’를 설치해 권력기관화를 예방한다는데, 군 기밀에 대한 민간 개입 확대 우려도 있다.
방첩의 공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적대세력은 언제나 가장 먼저 그 틈새를 발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첩사 해체의 명분이 아니라, 방첩 공백을 막을 실질적 방안이다. 확실한 대안 없이 해체가 추진된다면 정치적 목적에 따른 조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방첩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가안보이며, 방첩의 빈틈은 곧 국가의 빈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