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 [채성준 칼럼] 북한 개정 헌법,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

통일부가 지난 6일 공개한 북한 개정 헌법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담겼다. ‘조국통일’과 ‘민족대단결’ 표현이 삭제됐고, 대한민국을 별개의 국가로 전제하는 영토 조항이 신설됐다. 여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 무력 지휘권 근거가 포함되어 있다.
겉으로만 보면 “북한도 이제 대남 적화 통일을 포기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전쟁 위험도 줄어드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필요성도 없어진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될 가능성마저 다분하다.
이 지점에서 이번 북한 개정 헌법을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건 “김정은이 남북 체제 경쟁에서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에 통일보다는 체제 유지와 권력 보호에만 집중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실제로 남북 간 경제력과 생활 수준 격차는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벌어져 있어 얼핏 보면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히 ‘후퇴’나 ‘포기’로만 봐서는 안 되는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실제로 이번 헌법 개정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은 통일 표현 삭제 자체가 아니라 핵 관련 조항이다. 김정은에게 핵 무력 지휘권을 부여하고, 필요시 핵 사용 권한을 위임할 수 있는 근거를 헌법에 담은 것이다. 이는 핵무기를 체제 운영의 중심축으로 헌법화했다는 의미다.
과거 북한은 적어도 ‘민족 통일’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의식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한민국을 별개의 적대국으로 규정하며 핵을 앞세운 압박과 대결 구도를 노골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통일이라는 외피는 사라졌지만, 핵 위협은 오히려 체제 전략의 전면으로 올라온 셈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조직 폭력배의 변화를 떠올려보면 쉽다. 과거 조폭들이 ‘의리’와 ‘형님 문화’로 자신들을 포장했다면, 오늘날 범죄 조직은 공포와 실질적 힘 자체를 지배 수단으로 활용한다. 북한 역시 이제는 ‘민족’이라는 정치적 명분보다 핵이라는 현실적 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더구나 북한이 한미동맹 해체 목표를 포기한 것도 아니다.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적도 없다. 달라진 것은 목표가 아니라 접근 방식이다. 과거에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감성적 접근을 활용했다면, 이제는 핵보유국 지위를 앞세워 한국 사회 내부의 안보 피로감과 동맹 회의론을 흔들 가능성이 더 커졌다.
특히 핵 조항은 미국과 한국을 향한 강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정은 개인에게 핵 지휘권을 집중시키고, 유사시 핵 사용 권한 위임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은 결국 “지도부 제거를 시도해도 핵 보복은 가능하다”는 신호와 다르지 않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북한 내부의 체제 논리 변화다. 북한은 그동안 ‘민족 통일’을 지상 과제처럼 선전하며 주민들의 희생과 통제를 정당화해 왔다. 그런데 주민들 사이에서조차 “김정은이 체제 경쟁에서 자신이 없다 보니 통일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인식이 퍼진다면, 이는 체제의 정당성 자체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제는 북한 주민들에게조차 대한민국이 자신들보다 훨씬 잘살고 있다는 걸 차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스스로 ‘민족 통일’ 담론을 걷어냈다는 것은 과거처럼 ‘민족 통일’이나 ‘남조선 해방’ 구호만으로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북한은 ‘민족 통일’ 같은 추상적 담론 대신 핵 강국론과 반미 서사를 결합한 새로운 체제 논리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핵을 가진 채 생존하는 수준을 넘어, 핵 무력을 기반으로 미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있는 대한민국을 복속시켜야 한다는 방향으로 주민 설득 논리까지 재무장하려는 것이다.
결국 김정은은 ‘민족 통일’ 대신 핵과 체제 생존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 서사를 구축하려 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에 대한 위협 의지까지 약해졌다고 보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이번 북한 헌법 개정의 본질은 ‘평화 선언’이 아니다. 김정은 체제가 김일성·김정일 선대의 통일 담론을 걷어내고, 핵을 중심으로 한 적대적 공존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사라진 것은 통일 구호이지, 위협 자체가 아니다.
<원문출처>
경상매일신문 https://www.ksmnews.co.kr/news/view.php?idx=604174(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