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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열 서경대 경영학부 교수 칼럼: [전규열 칼럼] 국가부채 '속도조절'이 과제...'지속가능 성장'의 출발점

‘재정준칙’의 조속한 법제화…경직성보다 ‘유연성’ 확보해야
미국식’페이고’도입…의무지출 증가 대비해 재원조달 방안 입법의무화
한국이 3월 수출이 '슈퍼 사이클'에 올라탄 반도체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한국이 3월 수출이 ‘슈퍼 사이클’에 올라탄 반도체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최근 우리 경제는 반도체 슈퍼싸이클(초호황)에 따른 수출호조 덕분에 긍정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는 전인미답의 7000선을 돌파했고, 지난 3월 경상수지도 반도체 수출 호조와 11년4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선 여행수지 덕분에 역대 35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성장률 전망도 IB 평균 2.4%로 올라왔다.

 

반면, 중동전쟁의 여파에 따른 고유가 부담으로 소비자물가는 4월말 평균 2.5%로 높아졌고, 당분간 상승세는 이어질 전망이어서 고물가와 1,400원대 중반의 고환율 등이 우리경제에 울리는 경고음도 심상치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연금 지출 증가세가 선진 G20 국가 중 가장 빠를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또한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중동전쟁에 따른 유가와 수입물가 급등으로 우리 돈의 실질적인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려가 되는 것은 우선순위에 밀려 무감각해진 부채 문제다. 국가부채가 이미 1,300조원을 돌파하면서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GDP 대비 49%에 달하는 숫자다. 문제는 규모보다 증가 속도다. 저출산·고령화로 의무지출이 자동적으로 늘어나고, 경기부양 명분의 반복적 추경이 습관화 되며, 공공기관 부채와 연금충당 부채까지 더하면 GDP 대비 181%에 이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축통화국은 국가부채가 많아도 화폐를 발행해 버틸 수 있는 ‘완충 능력’이 있다. 하지만 비기축통화국은 부채가 늘어나면 국가 신용등급 하락→금리 상승→환율 급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원화의 실질 가치가 하락하며 구매력이 떨어진 현상은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고령화의 늪’에 빠진 연금은 일본보다 3.5배 빠르다. IMF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부터 2030년까지 한국의 GDP 대비 연금 지출 비중은 0.7%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미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0.2%포인트)의 3.5배에 달하는 속도다. 일본은 이미 노인 인구가 많아 증가세가 둔화한 반면, 우리는 급격한 저출생과 맞물려 고령화가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2050년까지 늘어날 연금 지출 합계는 GDP의 41.4%에 달할 것으로 추산 된다.

 

문제는 정부의 대응이 늦다는 점이다. 재정준칙 논의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고, 구조개혁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경제 성장률을 크게 웃돌며 내년에는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비기축 선진국 평균을 처음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의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경제 성장률을 크게 웃돌며 내년에는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비기축 선진국 평균을 처음 넘어설 전망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첫째, ‘재정준칙’의 조속한 법제화다. 국가부채가 무분별하게 늘어나지 않도록 재정적자 폭을 GDP의 일정 비율(예: 3%) 이내로 제한하는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평시에는 엄격히 적용하되, 경기침체·재난 때는 예외는 두는 유연성 확보가 핵심이다. 이는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 “우리는 부채 관리를 철저히 하는 나라”라는 신뢰를 주어 국가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둘째, 미국식 ‘페이고(PAYGO, Pay-As-You-Go)’ 원칙 도입이다. 페이고는 ‘번 만큼 쓴다’는 원칙으로, 새로운 지출 사업을 만들 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재원 마련 대책(세출 삭감이나 증세 등)을 동시에 제출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포퓰리즘적인 선심성 예산 편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재정 지출의 합리화를 유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다.

 

셋째, 숨은 부채를 함께 관리하는 ‘광의의 재정’ 관점이 필요하다. 표면상 국가채무만 관리해서는 실상을 놓친다. 공기업 부채, 연금충당부채, 각종 보증성 채무를 포함한 광의의 부채를 함께 보아야 한다. 재정의 건전성은 장부 속 숫자보다 국가가 미래에 감당해야 할 의무를 얼마나 정확히 드러내느냐에 달려 있다. 투명성이 높아질수록 정책 선택도 성숙해지고, 사회적 합의도 쉬워진다.

 

넷째, 세입 기반을 넓히는 개혁도 피할 수 없다. 재정건전성은 지출 절제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 성장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세입이 약해지면 적자는 구조적으로 커진다. 따라서 조세지출 정비, 비효율적 감면 축소, 과세 형평성 제고를 통해 세입 체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금을 더 걷자”는 구호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부담하고 그 재원이 어디에 쓰이는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다섯째, 재정의 방향을 미래 성장으로 연결해야 한다. 지금의 재정개혁이 단순한 절감 경쟁이 되면 경제는 오히려 더 약해진다. 줄인 재원은 AI, 인공지능 인프라, 첨단 제조, 인력 재교육처럼 생산성을 높이는 분야에 투입돼야 한다. 재정의 목적은 빚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빚이 미래 성장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하는 데 있다. 이것이 재정과 성장의 선순환이다.

 

여섯째, 원화 국제화와 대외신인도 관리를 장기 과제로 다뤄야 한다. 원화가 국제 거래와 금융시장에서 더 널리 쓰일수록 한국은 외화충격과 신용도 변동에 덜 흔들린다. 이는 단기간에 완성될 과제는 아니지만,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이 부채를 감당하는 체력을 키우는 중요한 구조개혁이다.

 

결국 재정의 핵심 과제는 “빚을 더 내서 버티는 나라”가 아니라 “빚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정부는 단기 경기 대응과 장기 건전성 사이의 균형을 복원해야 한다. 재정준칙, 의무지출 개혁, 세입 기반 확충, 미래 투자라는 네 가지 축이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국가부채 논쟁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전규열

 

경영학 박사

폴리뉴스 부사장 겸 편집국장

국회입법지원위원

KT스카이라이프 시청자위원

서경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저서> 이것만 알면 경제인싸 외 다수

 

<원문출처>

폴리뉴스 https://www.pol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0706(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