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자리 뺏는다” 들으며 버텼다…이제 기술로 먹고사는 여자들 시대
[만남] 강선미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남초 전자공학과 나와
여성 유일 전자공학과 교수
90개 단체 이끄는 리더로
“AI 전환 위기, 여성들엔 기회
말하고 알리고 연대해야”

“너 때문에 남학생이 자리를 뺏겼잖아.” 복학생 남자 선배가 화를 냈다. 신입생이던 강선미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 회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1977년이었다. 그해 고려대 공학 계열 신입생 500명 중 여학생은 3명. 실험실 건물엔 여자 화장실이 없어서 급하면 다른 건물로 뛰어가야 했다.
오기로 버틴 세월이 길었다. ‘일하는 여성’이 흔치 않던 시절,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공학인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경대 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로 28년을 재직했다. 동년배 남성들은 부닥치지 않는 장벽을 몇 번이나 넘었다.
올해 1월 여성과총 제13대 회장에 올랐다. 90개 단체, 8만 명으로 구성된 협회를 이끌며 다양한 여성과학기술인들을 하나로 묶고, 여성이 과학기술과 만나 벌일 수 있는 대단하고 멋진 일들을 널리 알리고 펼쳐 보이려 분주히 뛰는 중이다.


부친 고(故)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은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기틀을 세운 1세대 엔지니어였다. 어릴 적 집 안방 건넛방은 늘 분해된 부품과 납땜인두 연기로 가득했다. “엔지니어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직업이다. 국가와 인류에 가장 유익하게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야.” 아버지의 입버릇이었다.
강 회장도 수학과 물리가 좋았다. 고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에서 전기전자공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럽과 한국의 학제 차이로 독일에서 한국 4년제 대학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억울하게도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두 아이를 낳고도 일을 놓지 않았다. 1997년 서경대 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로 28년을 재직했다. 디지털 신호처리기반 분야, 특히 영상 처리와 음성 처리 분야를 중심으로 청각장애인 지원 시스템, 화자 인식, 잡음 환경에서의 음성 강화 기술 등 인간 중심의 실용적 연구에 매진했다. “남보다 많이 배웠다면, 그만큼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연구로 실천하고자 힘썼다.


연구실 밖으로 한 발을 내딛게 된 건 한국통신학회와의 인연 덕이다. 차균현 당시 학회장이 강 회장을 총무 간사로 불러들였고, 여성위원회 설립을 권유했다. 처음엔 “여성만 따로 모으는 게 싫었다”며 고사했지만 결국 위원회를 만들었다. 그 위원회가 여성과총과의 연결고리가 됐다. 여성과총 2대 회장인 이혜숙 현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소장의 권유로 여성과총에 발을 들였고, 3대 김지영 회장 시절 연차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 길에서 강 회장에게 만난 잊지 못할 선배들이 많다.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이하 한여공) 초대 회장, 여성과총 5대 회장을 지낸 최순자 교수다. 인하대에 재직하면서도 주말마다 여자 중학교를 찾아가 멘토링을 했고, 장학금도 직접 지원했다. 본인이 어렵게 공부한 경험이 있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었다는 뜻을 전해 들은 강 회장은 그 헌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후 한여공, 한국공학교육학회와 여성과총을 오가며 오명숙 회장을 보필했다. 총무부회장을 지냈고, 권오남 전 회장 때 감사역을 맡다가 회장으로 선임됐다. “서포터(supporter)로 살아온 사람인데 어느새 가장 앞자리에 서게 됐다”며 웃었다.
2023년 기준 한국 여성 연구원 비율은 23.7%. OECD 최하위권이다. 강 회장은 여성 과학기술인이 지나치게 과소평가됐다고 했다. 여성과총에 몸담은 이래로 다양한 여성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려 힘써 온 이유다. 이달 여성신문과 함께 ‘여성 과학자로 산다는 것’ 연재도 시작했다. “여성과학기술인 한분 한분의 소중한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여성이 가진 공감 능력과 설득력은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강점이에요. 그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과학커뮤니케이터 발굴도 추진하고 싶습니다.”

강 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현안은 AI 교육이다. 여러 단체와 협력해 다양한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AI 혁신 경쟁에서 여성이 절대 불리하지 않다는 확신도 있다.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여성을 무시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요즘 주목받는 AI 돌봄 로봇을 개발하려면 여성의 생각과 행동을 가장 많이 담아야 하죠. 여성도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기술로 먹고살 수 있고,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더 공정하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덩치만 크다고 살아남는 시대가 아니에요. 준비한 사람만 살아남겠죠. 저희 회원단체장들 중에는 새로운 AI 도구 사용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을 위한 기초 과정부터 시작해서 동기를 부여하고 싶어요. 또 AI 시대에 여성 리더로서 어떻게 가치 창출을 해야 할지를 탐색하는 리더십 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 AI의 학습 데이터 편향은 시급히 해결할 과제다. “재료가 나쁘면 아무리 요리 솜씨가 좋아도 소용없잖아요. AI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편향돼 있다면, 결과도 편향될 수밖에 없어요. 그 방향만큼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회원단체 간 협력 강화도 핵심 과제다. 기존 ‘단체지원사업위원회’를 ‘단체협력위원회’로 개편했다. “지원을 넘어서 단체끼리 실질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게 목표다.

외로운 여성과학기술인들의 ‘옆자리 언니’ 되겠다
많은 여성 공학도들의 롤모델인 강 회장이지만, 정작 본인은 오랫동안 롤모델을 만나지 못했다. 여성과총과 인연을 맺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여성 과학기술인들을 만났다. “남자들 많은 세계에서 혼자 걸어갔어요. 여성과총에 들어와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분들 모두가 제 롤모델이 됐죠.
바로 앞에 선배가 보여야 나도 저 길을 갈 수 있겠다 싶잖아요. 그러니 더 많은 여성 과학기술인의 이야기를 알려야 해요.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돼요. 내 옆자리 언니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때로는 더 힘이 되니까요.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옆에 있어 주는 것.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죠.”
국책 결정 과정에서 여성과총의 영향력을 키우는 일도 과제다. 작은 성과라도 지속적으로 쌓아가되, 혼자가 아니라 연대로 풀자는 게 강 회장의 전략이다. “비슷한 단체끼리 미묘하게 경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바닥에서 무슨 경쟁이에요. 똘똘 뭉쳐야죠. 하하하.”
<원문출처>
여성신문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6336(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