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 원칙과 언어 사이, 외교가 설득력을 얻는 방식

한 전직 외교관은 중동 분쟁 관련 브리핑 문안을 두고 ‘비판’이라는 표현을 쓸지, ‘우려’로 바꿀지를 두고 오랜 시간 논의했던 경험을 전한다. 사소해 보이는 단어 하나가 상대국의 인식을 바꾸고, 나아가 양국 관계의 흐름까지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발언을 둘러싼 논란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쟁점은 인권 문제 제기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어떠한 언어로 표현했느냐다. 논란의 핵심은 전체적인 맥락이 어떠하든,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비유는 한 국가의 역사적 기억과 정체성에 깊이 맞닿아 있다는 데에 있다. 전시 상황에서 민간인 피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역할이지만, 접근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중동 정세는 군사적 충돌과 국제정치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특정 표현 하나가 외교적 신호로 해석돼 예상보다 큰 파장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정치권의 평가는 엇갈린다. 여권은 국제인도법과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정당한 문제 제기라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 야권은 외교적 파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평가의 차이는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기준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중 “이란은 UAE의 적”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을 때도 유사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엔 지금과는 반대의 정치적 구도가 형성되며, 발언의 적절성을 둘러싼 평가가 엇갈렸다. 이는 특정 발언의 문제라기보다, 외교 사안을 바라보는 정치적 해석이 얼마나 쉽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번 논란은 특정 발언의 옳고 그름을 넘어,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태도 자체를 되돌아보게 한다. 외교는 정권이나 진영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 전체의 신뢰와 직결되는 영역이다. 평가 기준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흔들린다면, 그 영향은 고스란히 국가의 외교적 신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논점도 제기된다. 중국이나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신중하거나 침묵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이 ‘선택적 개입’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될 경우, 인권을 강조하는 외교 메시지의 설득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보편적 가치 외교는 선택이 아니라 일관성을 통해 힘을 얻는다.
한·일 관계 역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둘러싼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의 표현 방식과 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등에서 일본 측 입장이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해 왔고, 그로 인해 외교적 긴장이 고조된 사례도 적지 않다. 우리가 문제 삼았던 것은 단어 자체라기보다, 그 단어가 드러내는 인식과 태도였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타인의 역사적 기억을 다루는 데 있어 그에 상응하는 신중함을 가져야 한다. 표현 하나가 상대에게는 과거의 상처를 다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까닭이다. 외교에서 일관된 기준은 선택이 아니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전제다.
외교는 국익을 향한 선택의 과정이다. 특히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동맹을 고려해야 하는 한국에게 중동 문제는 가치와 전략이 얽힌 복합적 사안이다. 따라서 판단과 표현 역시 국익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원칙의 후퇴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위한 책임 있는 접근이다. 외교에는 일관성뿐 아니라 절제와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원칙과 표현의 균형이다. 한국 외교가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려면, 무엇을 말할지 뿐 아니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이번 논란 역시 국익을 해치지 않도록 신중히 관리·수습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도 이를 정략적으로 활용하기보다 외교적 신뢰를 지키는 책임 있는 접근이 요구된다. 외교는 정쟁이 아니라 국가 신뢰를 축적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원문출처>
경상매일신문 https://www.ksmnews.co.kr/news/view.php?idx=600663(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