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 [채성준 칼럼] 흔들리는 미국의 신뢰, 더 불안해지는 국제질서

최근 갤럽(Gallup)의 2025년 세계 여론조사는 국제질서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 세계 130여 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미국 지도부에 대한 지지율 중간값은 2024년 39%에서 31%로 하락한 반면, 중국은 32%에서 36%로 상승하며 미국을 앞질렀다. 특히 중국이 5%포인트 앞선 것은 최근 19년 사이 가장 큰 격차로, 단순한 등락을 넘어 국제질서의 균열을 시사하는 결과로 읽힌다.
눈여겨볼 점은 변화의 방향이다. 중국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개선되었다기보다, 미국에 대한 신뢰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미국 지도부에 대한 불신임은 48%로 상승해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국제사회가 미국의 힘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 그 힘이 행사되는 방식과 일관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신뢰 약화는 단기적 요인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동맹을 ‘가치 공동체’ 대신 ‘비용과 거래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경향은 협력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행정부 교체에 따라 외교 정책의 방향이 크게 흔들리는 구조는 미국이 지녀온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여기에 국내 정치의 양극화까지 더해지면서 정책의 지속성과 신뢰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투키디데스의 통찰을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신흥 강대국의 부상이 기존 세력 판도를 흔들고, 그에 따른 두려움과 불안이 축적되며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다만 오늘의 상황은 고전적 의미의 단순한 패권 충돌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중국은 분명 부상하고 있지만 압도적 대체 세력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미국 역시 외부 위협뿐 아니라 내부 요인으로 신뢰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전통적 의미의 전면전보다 경제·기술·안보가 결합된 장기적 경쟁, 국지적 충돌, 그리고 블록화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질서는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하기보다 복수의 힘이 경쟁하며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높은 대외 의존도와 주변 4강에 둘러싸인 안보 지형, 특히 북핵 위협이라는 이중 삼중의 구조 속에서 국제질서의 불안정은 곧 정책 리스크로 직결된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은 모호한 균형이 아니라 방향의 명료성이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한국 안보의 핵심 축이다. 미국 지도부에 대한 국제적 지지율 하락은 외교 방식과 신뢰 문제에 대한 평가 변화일 뿐, 군사력·핵 억지력·동맹 네트워크 등 구조적 역량 자체가 약화된 것은 아니다. 특히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데 있어 미국의 확장억제 능력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요소다.
동시에 자체적인 억지력 강화도 병행되어야 한다. 정보·감시·정찰 능력, 미사일 방어 체계, 사이버와 우주 영역 등에서의 역량 확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동맹이 존재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략적 자율성은 확보되기 어렵다.
중국과의 관계는 보다 현실적인 기준 위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경제적 협력은 유지하되, 안보와 기술 영역에서는 무엇보다 일관된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의 공급망 재편 흐름은 이러한 문제가 단순한 외교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임을 보여준다.
또한 안보 협력은 점차 다층화되고 있다. 기존의 양자 관계를 넘어 다자적 협력 구조 속에서 역할을 조정하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이는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불확실한 국제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보완의 성격이 강하다.
결국 이번 갤럽 조사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미국을 핵심 행위자로 인식하지만 그 지도력에 대한 신뢰는 약화되고 있고, 동시에 중국 역시 충분한 대안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제질서가 중심을 잃은 채 보다 복합적이고 불안정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변화의 성격을 정확히 읽고 일관된 장기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운명을 가른다.
<원문출처>
경상매일신문 https://www.ksmnews.co.kr/news/view.php?idx=598804(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