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군사학과 교수 칼럼: ‘간첩죄’ 개정 다음 과제는 경제안보법[포럼]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형법의 간첩죄 조항이 개정됐다. 1953년 법 제정 이래 ‘적국’에 한정되던 적용 범위를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한 것은 분명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조치다. 그러나 법조문이 바뀌었다고 곧바로 안보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실질적 뒷받침이 따르지 않는다면 ‘반쪽 개정’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간 중국인이 우리 해·공군 기지와 첨단무기를 촬영하다 적발돼도, 전직 군 정보요원이 해외에 군사기밀을 넘겨도 간첩죄가 적용되지 못했다. 국가 핵심기술을 중국 기업에 넘겨도 산업기술보호법으로 처벌하는 게 고작이었다. 최근 5년간 국외로 유출된 산업기술 피해 추산액이 20조 원을 넘는다는 통계는, 법의 공백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선, 새롭게 적용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라는 규정이 실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얼마나 실효적으로 작동할 것인가이다. 형사법은 엄격 해석이 원칙이다. 해외 민간기업이 ‘이에 준하는 단체’에 해당하는지, 외국 정부의 직접적 지령이나 자금 개입을 입증하지 못하면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법조계의 견해는 엇갈린다. 만약 국가 개입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산업기술보호법으로 돌아가 최대 6년형에 그쳐야 할지 모른다.
미국은 1996년에 제정한 경제간첩법(EEA)을 통해 투 트랙 체계를 운용한다. 외국 정부 개입이 입증되면 경제간첩죄를 적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영업비밀 침해로 중형을 부과한다. 대만 역시 ‘유출 지역’을 요건으로 삼아 처벌을 강화했다. 반면, 우리는 간첩죄와 산업기술보호법 사이에서 요건 다툼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더 엄한 ‘경제안보법’ 제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산업계의 목소리를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사 역량이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2024년 폐지되고 경찰이 사실상 이를 전담하게 됐다. 간첩 수사는 장기 잠복 수사, 인적 네트워크 분석, 해외 정보 협력이 복합적으로 요구된다. 수십 년간 축적된 국정원의 노하우를 경찰이 단기간에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다. 조직 구조상 순환보직과 단기 성과 압박을 받는 경찰 체계가 간첩 수사에 최적화돼 있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군 정보·방첩 체제도 국군방첩사령부 해체 등 재편·축소가 진행 중이다.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 반복되는 터에 그 기능이 약해진다면, 법 개정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간첩의 개념도 재정립해야 한다. 오늘날 간첩은 전통적 정보요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는 해커, 제3국 기업을 매개로 움직이는 산업 스파이, 심지어 일상적 직무 접근권을 가진 내부자까지 모두 잠재적 행위자가 될 수 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포괄적 안보 환경 속에서, ‘군사기밀’ 중심 사고에 머물러서는 산업·기술·데이터 안보를 지킬 수 없다.
73년 만의 법 개정은 늦었지만 꼭 필요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경제안보를 국가 전략의 중심에 두는 법체계 정비, 정보·수사 기관 간 제도화된 정보 공동체 구축, 전문 인력의 장기간 양성 체계 확립이 동반돼야 한다. 간첩법 개정이 또 하나의 ‘상징 정치’로 남을지, 아니면 경제·군사 안보를 실질적으로 지켜내는 전환점이 될지는 지금부터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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