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 [채성준] 끝나지 않는 전쟁과 중재자가 사라진 세계, 그 문턱에 선 한국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장, 안보전략연구소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곧 끝낼 수 있다”는 정치적 선언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몇 해를 넘기며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두 전쟁은 성격과 지역은 다르지만, 강대국의 중재와 압박만으로 분쟁을 종결할 수 있다는 기존 국제질서의 전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전쟁은 관리될 수는 있어도, 정치적 결단만으로 정리되지는 않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두 전쟁 모두에 대해 자신이 사태를 정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발신해 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는 “협상으로 빠르게 끝낼 수 있다”고 말해 왔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강한 개입 의지를 과시했다. 그러나 말의 크기와 달리, 두 전쟁 모두에서 전투를 멈출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강대국조차 전쟁을 ‘끝내는 주체’가 아니라 ‘관리하는 행위자’로 밀려난 국제관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단순한 영토 분쟁이나 국지적 충돌의 단계를 넘어섰다. 유럽 안보 질서의 재편, 미국 패권의 신뢰성, 러시아 체제의 존속이 동시에 걸린 구조적 충돌이다. 국제정치 현실주의의 대표적 학자인 존 미어샤이머가 지적하듯, 이 전쟁은 개인의 오판이 아니라 강대국 경쟁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에 가깝다. 이 조건이 유지되는 한,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강경한 언사는 동맹 결속에는 기여할지 모르지만, 전쟁을 종결시키는 해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대표적 이론가인 존 아이켄베리가 말하듯, 오늘의 국제질서는 위기를 종식시키는 체제가 아니라 위기를 관리하며 연장하는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중동 사태가 이스라엘·하마스를 넘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 역시, 이 구조적 한계를 다시 확인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지금 가장 주목하는 다음 위험 지점은 대만해협을 중심으로 한 서태평양과 남중국해다. 이 지역의 위험성은 전쟁 의지가 유독 강해서가 아니라, 군사적 근접 운용이 이미 일상화된 가운데 작은 사고 하나가 곧바로 주권과 체면, 동맹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구조에 있다. 최근 이 지역에서 군사적 접촉과 경고성 행동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은, 이 위기가 미래의 가정이 아니라 진행 중인 현재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서태평양 위기는 한국에게 결코 ‘남의 전쟁’으로 남지 않는다. 대만해협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은 중립을 선언하기도, 전면 개입을 쉽게 선택하기도 어려운 위치에 놓인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자 중국과 깊이 얽힌 경제 구조를 가진 한국에게 이 위기는 전쟁 참여의 찬반 이전에, 어떤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전면전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 작전이 한반도 주변 기지와 후방 지원을 전제로 작동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한국은 명시적 결정을 내리지 않더라도, 중국에게는 사실상의 이해당사자로 인식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 안보 전략의 취약성이 드러난다. 대만해협 위기는 여전히 추상적 변수로 취급되지만, 실제로는 선택을 미룰수록 선택지가 더 나빠지는 문제다.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의 경고처럼, 동맹은 안전을 제공하는 동시에 위험을 이전한다. 사전 합의 없는 연루는 전략이 아니라 사고에 가깝다.
지금은 유럽과 중동, 서태평양이 동시에 흔들리는 시기다. 이런 환경에서 한반도는 더 안전해지기보다 오히려 예측 불가능성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군사력의 과시가 아니라, 전쟁에 연루되는 경로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억제와 대화, 동맹과 자율성의 균형을 현재의 위기 국면에 맞게 구체화하고, 전쟁을 정치의 선택지에서 제거하려는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에 한국에게 가장 위험한 선택은 결단이 아니라, 아무 결정도 하지 않은 채 이미 전쟁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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