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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채성준 칼럼] 신제국주의 시대,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 한반도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장, 안보전략연구소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장, 안보전략연구소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다시 세계를 덮고 있다. 그 징후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바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무력 개입과 그린란드에 대한 집착이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압박이나 수사적 과장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주권과 규범을 넘어 군사력을 동원해 정권을 교체하고 전략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강대국의 인식이 공공연히 드러난 사건이다. 미·중 패권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미 균열이 시작된 국제질서는, 이 지점에서 신제국주의의 시대로 본격 진입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제국주의는 결코 낯선 개념이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강대국들은 힘의 우위를 앞세워 세계 질서를 재편했고, 지도 위에 그어진 선들은 식민지 지배와 강제 병합, 인위적 국경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한반도 역시 그 소용돌이 속에서 국권을 상실했고, 해방 이후에도 분단이라는 구조적 상처를 떠안았다. 제국주의의 본질은 단순했다. 강대국의 이해가 약소국의 선택권을 대체했고, 그 대가는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불안정으로 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 새로운 규범 질서를 구축했다. 주권 존중과 영토 보전, 무력 사용의 제한, 다자주의와 유엔 중심 질서가 그것이다. 냉전이라는 극단적 대립 속에서도 국경을 무력으로 변경하거나 한 국가의 주권을 정면으로 침탈하는 행위만큼은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일정 부분 유지됐다. 이 질서는 완전하지 않았지만, 강대국의 팽창을 최소한 노골적인 형태로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억제 장치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이 안전장치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힘이 규범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로 증명했다. 여기에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은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에너지 자원과 중남미 영향력의 핵심 거점인 베네수엘라를 대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제국주의적 개입 논리가 다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린란드를 전략 자산으로 삼겠다는 발상 역시 국제 규범보다 힘과 계산을 우선하는 사고의 연장선이다.

이러한 흐름은 미·중 경쟁에서 더욱 구조적으로 드러난다. 양국의 대립은 이념이나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표준과 공급망 통제, 군사적 영향권을 둘러싼 경쟁이다. 이는 21세기형 제국주의의 다른 모습이다. 신제국주의는 더 이상 식민지에 깃발을 꽂지 않는다. 대신 군사기지, 경제적 종속, 기술 규칙, 안보 동맹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한다. 형식은 세련돼졌지만, 약소국의 선택권이 축소되고 결정권이 강대국에 집중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과거 제국주의가 남긴 균열들도 다시 흔들리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인위적 국경에 따른 분쟁, 동유럽과 발칸의 민족 갈등, 동아시아의 역사·영토 문제 충돌은 모두 제국주의의 유산이다. 강대국들이 다시 힘의 언어로 세계를 해석할수록, 이 오래된 균열은 언제든 현실의 위기로 전환될 수 있다. 트럼프의 세계관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억눌려 있던 제국주의적 사고를 국제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냈다는 데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한반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강대국 전략이 충돌하는 지역은 언제나 협상의 대상이 되기 쉽고, 방심한 국가는 다시 객체로 전락한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도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첨단 기술력,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미동맹을 포함한 외교·안보 자산을 갖춘 국가다. 문제는 이 역량을 얼마나 주도적인 전략으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냉정한 현실 인식과 선택의 주도권이다. 규범과 가치는 힘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하고, 힘만을 앞세우면 정당성과 신뢰를 잃는다. 동맹은 필수지만 판단까지 위임하는 순간 국익은 흔들린다. 외교 선택지를 넓히고 기술·공급망 자립을 강화해 한반도가 강대국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제국주의의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이 객체로 남을지, 균형자이자 주체로 설지는 지금의 전략에 달려 있다.

<원문출처>

경상매일신문 https://www.ksmnews.co.kr/news/view.php?idx=586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