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북·중·러 관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우리의 선택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장, 안보전략연구소장

↑↑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장, 안보전략연구소장
지난 9월 3일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오른 장면에 세계의 이목이 모아졌다. 이어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행사에는 중국의 리창 총리와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참석하며 또다시 밀착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이 3자 연대는 단순한 이념적 결속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협력과 갈등을 반복해 온 실용적 이해관계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은 흔히 북한을 일방적으로 도운 ‘혈맹’으로 인식되지만, 실제 관계는 훨씬 복합적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국공내전 시기, 북한은 일본군 잔여 무기와 소련이 재분배한 장비 일부를 중국 홍군(紅軍)에 제공했고, 압록강·두만강 일대는 병력 이동과 후방 지원의 거점이 되었다. 동북항일연군 출신 조선인 부대가 주요 전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오히려 중국이 북한에 ‘빚을 졌다’는 인식을 남겼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 참전으로 북한은 기사회생했지만, 이후 중국의 태도는 늘 불신을 낳았다. 1960년대 중·소 분열과 미·중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중국은 북한의 안보 우려를 외면했고, 군사·경제 지원도 제한적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에는 북한 핵 문제와 유엔 제재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 불신이 더욱 깊어졌다. 오늘날 북·중 관계에 여전히 미묘한 긴장이 내재하는 이유다.
북·러 관계 역시 단순하지 않다. 소련은 북한 건국의 후견자였지만, 6·25 전쟁 휴전 과정에서 조기 종전을 압박한 것은 북한에 ‘배신’으로 남았다. 1960년대 군사원조 축소와 중·소 갈등 시기의 방치 경험은 불신을 심화시켰고, 이후 북한이 자주노선과 핵 개발을 추진하는 배경이 되었다. 오늘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속에서 북한의 군수 물자와 인력 지원을 활용하고, 북한은 그 대가로 자원·기술·외교적 후원을 확보하고 있다.
중·러 관계 또한 1950년대 ‘형제의 혈맹’을 자처했지만, 1960년대 갈등과 국경 무력 충돌을 거쳐 30여 년간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다. 이 시기 김일성은 두 나라 사이를 오가며 위험한 균형 외교를 구사했고, 이러한 ‘줄타기 외교’의 DNA가 오늘날 북한 외교의 근간으로 남았다.
결국 오늘날의 북·중·러 밀착은 단발적 전술이 아니라 이런 역사적 경험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은 미·중 전략 경쟁의 압박 속에서 북한을 완충지대로 삼고, 러시아는 전쟁 장기화로 인한 제재를 돌파하기 위해 북한과의 무기·물자 거래를 확대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지렛대로 군사 기술과 외교적 보호를 확보하며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려 한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이재명 정부는 북·중·러 결속이 강화되는 동안 ‘중견국 외교’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을 뿐, 그 틈새를 파고들어 파급 효과를 최소화할 전략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북 정책 또한 억지와 포용의 균형보다는 상대의 행보에 반응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로써 북한의 줄타기 외교와 중·러의 실리적 접근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어렵다.
북·중·러 관계는 ‘형제의 연대’라기보다 각자의 위기 대응과 전략적 계산이 교차하는 거래적 협력체제에 가깝다. 상호 불신의 전통이 남아있는 한 결속은 지속되더라도 견고한 동맹으로 발전하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한·미·일 협력체제가 예전과 같지 않은 현실에서 이 3자의 관계가 동북아 국제질서와 힘의 균형을 흔들면서 한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각 협력을 중심축으로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비하고, 유엔과 다자 채널을 활용해 북핵 문제를 국제적 관리 체제 속에 묶어둘 필요가 있다.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에는 전략적 설득과 압박을 병행하며, 대북 정책에서는 억지와 조건부 포용을 조화시켜 북한의 줄타기 외교를 무력화해야 한다.
국가 안보는 이상적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 전략적으로 대응할 때만, 우리는 북·중·러 밀착의 파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원믄츨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