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열 경영학부 교수:[전규열 칼럼] 반도체 호황 뒤에 숨은 금리의 역습
美 장기 금리 급등이 불러올 주담대 8%시대, 재정 기강과 부채 구조 개선이 답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이 미 국채 금리의 폭주로 인해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미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5.3%를 돌파하며 2007년 이후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은 단순한 금리 변동을 넘어, 세계 경제의 구조적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다.
이번 금리 쇼크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 적자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가 40조 달러(약 5경 6,000조 원)에 육박하면서 시장은 더 이상 ‘미 국채=안전 자산’이라는 신화를 맹신하지 않는다. 이자를 갚기 위해 국채를 더 발행하고, 그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금리가 다시 오르는 악순환의 고리’가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다시 등장했다. 이들은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에 반발해 채권을 대량 투매함으로써 시장 금리를 강제로 끌어올리는 투자자들을 뜻한다. 연준(Fed)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더라도 시장 스스로 긴축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아마존·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막대한 규모의 회사채를 찍어내면서 국채 수요를 빨아들이는 ‘구축 효과’도 금리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발 금리 충격은 서울 채권시장을 거쳐 곧바로 우리 가계의 목을 죄어온다 한국의 가계신용 잔액은 사상 처음으로 2000조 원을 돌파했으며,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주요국 중 최고 수준이다. 미국 장기 금리가 오르면 국내 국고채와 은행채 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이는 결국 주택담보대출 금리, 연 8% 수준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실제로 5대 은행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 상단은 이미 연 7.5%를 넘어섰다. 3억 원을 연 8% 금리로 빌린다면 월 이자만 200만 원에 달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반도체 착시’다. 최근 수출 호조로 성장률 전망치가 상향되었지만, 그 결실은 특정 업종에만 쏠리는 ‘K자형 양극화’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호황 뒤에서 고금리와 고물가에 신음하는 자영업자와 서민 경제의 그늘이 가려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기업들의 이익 체력이 튼튼해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계 자금이 자국으로 회수되는 ‘리패트리에이션(본국 환류)’이 현실화될 경우, 2022년 영국을 강타했던 ‘트러스 쇼크’와 같은 금융 발작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만만치 않다. 이에 정부와 금융당국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철저한 리스크 모니터링과 선제적 시장 안정화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 재무부가 금리 급등을 막기 위해 국채 바이백 규모를 2배로 확대했듯이, 우리 당국도 유동성 공급망을 점검하고 시장의 불안 심리를 차단해야 한다
둘째,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 금리 인상 사이클이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계 차주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채무 조정 지원을 강화하되,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지 않는 정교한 관리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셋째, 엄격한 재정 준칙 확립이 시급하다. 시장은 정부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주시하고 있다. 방만한 재정 운용은 시장의 신뢰를 잃고 금리를 더 끌어올리는 역풍을 부른다. 재정 건전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야만 금융 쇼크의 방화벽을 구축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반도체 호황이라는 성벽 안에서 안주할 때가 아니다. 금리의 역습은 예고 없이 찾아오며,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낸다. 지금이라도 부채 구조를 개선하고 재정 기강을 바로 세우는 고통스러운 혁신에 나서야 할 때다
<원문출처>
폴리뉴스 https://www.pol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1188(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