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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스파이 표적, 기술서 ‘사람’으로…“경제 방첩 체계 강화해야”

[산업스파이, 대한민국을 훔치다]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인터뷰
기술·인재 기업 넘어 국가 생존 자산
해외처럼 강력 처벌로 사전 예방해야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가 8월 19일 경기도 안양시 사무실에서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초격차를 외치며 대한민국 첨단 산업을 이끄는 기업들이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산업스파이의 기술 유출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현대차·LG·SK 등 굴지의 대기업도 기술 유출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30년 넘게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국가정보원(국정원)에서 활동한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기존보다 더 강력한 법률 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술 유출 사고가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의 문제로 확산할 수 있어서다.

 

경제 흔들리면 국가도 위험

 

채 교수는 “오늘날 국력을 뒷받침하는 핵심인 경제력의 기반은 첨단 기술”이라며 “대한민국은 부존자원(지질학적 자원)이 부족한 대신 인재와 기술로 성장한 나라다. 기술은 기업의 자산을 넘어 국가의 생존 자산과도 같다”고 말했다.

 

국가 경제가 흔들리면 국가 안보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안보의 최후 보루인 국방 예산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당시 정부와 국회는 국방비를 전년 본예산 대비 약 6%(1조원가량) 삭감했다.

 

채 교수는 “해외 기술 선진국들은 산업스파이를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보고 있다”며 “특히 중국을 주요 경계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첨단 산업의 상당수가 우리의 주력 산업과 겹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며 “핵심 기술 유출은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위기감은 국민의 인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설문 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2026년 6월 15~18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응답자 72.5%가 기술 유출을 개별 기업 차원이 아닌 국가적 위협 수준으로 인식했다.

 

채 교수는 “첨단 산업은 결국 ‘시간의 경쟁’”이라며 “하나의 기술을 개발하려면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수많은 시행착오 그리고 인재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 기업 모두 기술 유출이 한국 경제와 국가 안보에 끼칠 영향을 알고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대응 체계도 수립 중이다. 그럼에도 산업스파이 문제는 끊이질 않는다.

 

채 교수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기술력이 높아진 만큼 기술과 핵심 인력이 산업스파이의 중요한 표적이 됐다”며 “또한 산업스파이의 표적은 기술 자료에서 ‘사람’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핵심 연구자를 영입하면 문서로 남기기 어려운 시행착오와 공정 경험, 생산 노하우까지 확보할 수 있다”며 “핵심 연구자 한 명이 수십 권의 기술 자료보다 더 큰 가치를 갖게 돼 산업스파이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기업만 조심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채 교수는 “첨단 산업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 및 협력업체 그리고 대학·연구 기관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돼 있다”며 “이들은 대기업보다 보안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정 간첩법 한계 명확…특별법 필요

 

이런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려면 해외 선진국 수준의 인식 정립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채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미국은 산업스파이와 첨단 기술 유출을 국가 안보 문제로 보고 법무부·상무부·연방수사국(FBI) 등이 참여하는 전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이들은 AI·반도체·양자 등 핵심 기술의 불법 해외 이전을 추적 및 수사하고 수출 통제와 제재까지 연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기업 및 대학과 위협 정보를 공유해 기술 탈취를 사전에 차단하는 등 기술 보호를 국가 차원의 경제 안보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해외 주요 국가들은 기술 유출을 국가 안보의 핵심 위협 요인으로 본다. 관련 법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은 반간첩법, 대만은 국가안전법, 영국은 국가안보법으로 칭하고 산업스파이를 엄벌한다. 반면 한국은 산업기술보호법, 첨단전략산업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으로 산업스파이를 다룬다.

 

채 교수는 “핵심은 산업 보안 문제를 국가 차원의 ‘경제 방첩’으로 확대하는 것”이라며 “한번 해외로 넘어간 기술은 사실상 회수가 어렵기 때문에 사후 수사보다 사전 탐지와 예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정보기관과 수사기관 그리고 관계 부처가 위험 징후를 조기에 파악하고 기업과 공유하는 체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채 교수는 또 “중소·중견기업과 대학·연구기관에 대한 보안 진단과 사이버 보안 및 내부자 위험관리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핵심 연구자의 처우와 연구 환경을 개선하고 퇴직 기술 인력이 국내에서 계속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인력 차원의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보다 더욱 강력한 법제도 역시 필요하다고 채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산업스파이 가중처벌 특별법과 같은 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단순히 형량만 높이는 특별법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개정 간첩법으로 전통적 간첩죄의 공백을 메웠다면, 이제는 경제 안보의 공백을 메울 법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국가 핵심 기술의 조직적·계획적 해외 유출을 ‘경제 안보 침해 범죄’로 다루고, 가중처벌과 함께 알선·교사 및 범죄 수익의 몰수·추징까지 포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은 개정 반간첩법으로 국가 안전과 관련된 데이터·자료까지 보호하고, 외국 기관 등을 위한 영업비밀 절취 및 불법 제공도 별도 범죄로 처벌한다”며 “중국도 이렇게 자국 기술을 지키는데, 기술로 먹고사는 한국이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을 일반적인 기업 범죄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원문출처>

이코노미스트 https://economist.co.kr/article/view/ecn202608190003(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