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열 경영학부 교수: [전규열 경제insight]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역설, ‘네덜란드병’ 경계할 때
화려한 지표 뒤의 양극화, 구조개혁 골든타임
산업 다변화 필요…반도체 꺽여도 버틸 체력 길러야
초과 세수 잠재성장력 발굴에 쓰고, 소부장기업 지원

최근 한국 경제 지표만 보면 그야말로 ‘눈부신 봄날’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의 분기 영업이익 역시 수십조 원을 기록하며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역대 최대인 2,39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지표 이면을 들여다보면 걱정이 앞선다. 특정 산업의 홀로 호황이 오히려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해치는 이른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이례적으로 ‘네덜란드병’을 언급하며 반도체 쏠림 현상에 대해 강력한 경고장을 던졌다.
네덜란드병이란 1950년대 네덜란드가 북해 유전을 발견해 일시적 호황을 누렸으나, 오히려 자국 화폐 가치 상승과 자원 쏠림으로 제조업 등 다른 산업이 무너지며 경제가 침체된 현상을 말한다.
지금 한국 경제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민 전체의 실질 구매력을 뜻하는 국내총소득(GDI) 성장세가 국내총생산(GDP)을 크게 앞질렀다.
하지만 그 온기는 서민 내수 시장까지 닿지 않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산업들은 고유가와 내수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양극화의 늪’에 빠져 있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이 대규모 시설 투자가 중심이 되는 자본 집약적 산업이라 고용 창출 효과가 적다는 점이다.
전체 산업 생산에서 IT 제조업 비중은 절반을 넘겼지만, 일자리 비중은 겨우 2.6% 수준에 불과하다. 반도체가 수백조 원을 벌어들여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낙수효과’가 미미한 이유다.
오히려 반도체로 우수한 인재와 자본이 쏠리면서 다른 미래 산업의 성장을 막는 부작용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반도체 호황을 네덜란드병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네덜란드의 가스가 ‘자연이 준 횡재’였다면, 한국의 반도체는 수십 년간의 피땀 어린 투자와 기술 혁신이 만든 ‘실력’이라는 뜻이다. 또한 과거 사례와 달리 현재 원화 가치는 약세를 보이고 있어 다른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지 않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든다.
하지만 이러한 낙관론은 반도체가 본래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큰 산업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지금의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은 AI라는 특수 수요 덕분이지만, 미·중 갈등이나 미국·일본의 반도체 부활 프로젝트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언제든 꺾일 수 있다. 호황기에 거둬들인 막대한 세금을 체질 개선이 아닌 단기적 경기 부양에만 쓴다면, 업황이 하강 국면에 접어드는 순간 한국 경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국가 재정 측면에서도 반도체 의존은 ‘양날의 검’이다.
당장 내년 법인세 수입은 급증하겠지만, 이는 반도체 업황에 따라 국가 재정 전체가 흔들리는 불확실성을 키운다. 정부가 일시적인 세수 증대만 믿고 방만한 재정 운용을 펼친다면, 향후 불황기가 닥쳤을 때 재정 건전성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금융 불균형이다.
호황으로 풀린 돈이 미래 성장 동력을 위한 설비 투자가 아닌 부동산 같은 비생산적인 자산 시장으로 쏠린다면, 이는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을 약화시키는 또 다른 뇌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반도체 착시’를 넘어 어떻게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할까?
첫째, 호황기에 번 이익으로 ‘약한 고리’를 보강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를 줄이고,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개선하는 데 가장 적절한 재원이 바로 지금의 영업이익이다. 특히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를 강화해 반도체 호황의 성과가 국내 중소기업 전반으로 퍼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둘째, 산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한다.
반도체라는 강력한 엔진 하나만으로는 한국 경제라는 자동차가 오래 달릴 수 없다. 바이오, 로봇, 우주항공, 미래 모빌리티 등 반도체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신산업을 육성해 ‘반도체가 꺾여도 버틸 수 있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
셋째, 재정 운용의 지혜가 필요하다.
노르웨이가 북해 유전 수익을 국부펀드에 쌓아 미래 세대를 위한 재원으로 묶어두었듯, 우리 정부도 일시적인 초과 세수를 보수적으로 관리하며 중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우리에게 주어진 ‘천재일우’의 기회이자, 동시에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야 할 ‘숙제’를 던져주었다.
“가장 좋은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가 반도체 호황에 취해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훗날 역사는 지금을 ‘한국 경제가 네덜란드병에 걸려 쇠락하기 시작한 해’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가장 화려할 때 가장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원문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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