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 [채성준 칼럼] 호르무즈의 불길, 전략적 모호성의 대가

이란 전쟁은 더 이상 먼 중동의 분쟁이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선박 ‘나무호’가 공격받은 순간, 전쟁은 곧바로 한국 외교와 안보의 현실이 됐다. 정부는 공격 주체가 최종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외교가에서는 사실상 이란 또는 이란 연계 세력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만약 공격 주체가 공식적으로 이란으로 확인된다면, 한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현재 한국 정부의 대응은 전형적인 ‘전략적 모호성’에 가깝다. 미국과의 관계는 의식하되 중동 정세에 깊숙이 휘말리는 것은 피하려는 접근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이해할 만하다. 중동은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직결돼 있고, 섣부른 군사 개입이나 강경 대응은 분명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중요한 것이 원칙의 명확성이다. 안보 환경이 복잡할수록 국가의 전략 방향과 억제 의지는 더욱더 분명히 해야 한다. 전략적 유연성과 전략적 모호성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이를 증명하는 역사적 교훈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1950년의 ‘애치슨 라인’이다. 당시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은 극동 방위선을 설명하면서 한국과 대만을 명확히 포함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만으로 6·25전쟁의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김일성과 스탈린이 그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다. 그들은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고, 그 오판은 결국 남침이라는 치명적 선택으로 이어졌다.
억제력은 단순히 무기의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선을 넘으면 반드시 대응한다”는 의지가 분명할 때 유지된다. 반대로 신호가 흐려지는 순간, 상대는 침묵을 신중함이 아니라 망설임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지금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이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국제질서의 냉혹한 현실을 다시 보여줬다. 겉으론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양국 모두 상대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구조가 선명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미국은 동맹국들의 태도를 더욱 민감하게 본다. 누가 미국과 함께 위험을 분담하려 하는가, 누가 안보 질서의 혜택만 누리려 하는가를 냉정하게 계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단순한 ‘미치광이(mad man) 전략’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의도적으로 불확실성을 키우지만, 그 목적 자체는 비교적 분명하다. 동맹국의 충성도와 기여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거칠고 즉흥적으로 보이는 외교 방식 역시 결국 “누가 미국 편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확인하려는 과정에 가깝다.
일본은 이 흐름을 비교적 빠르게 읽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트럼프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며 미·일 동맹의 결속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호르무즈 문제와 인도·태평양 전략, 공급망 문제까지 하나의 안보 패키지로 묶어 접근하는 모습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수준의 메시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외교에는 신중함이 필요하지만, 신중함과 모호함은 다르다. 자국 선박이 공격받고 국제 해상 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입장을 흐리게 유지한다면, 미국뿐 아니라 주변국과 중동 국가들까지 한국을 ‘결정하지 못하는 국가’로 보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결국 한국의 억제력과 외교적 신뢰까지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정치에서 억제의 핵심은 상대가 “유사시 저 나라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확신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 조야의 시선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한국의 외교·안보 결정 하나하나까지도 ‘전략적 신호’로 읽으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무모한 참전론도, 무기력한 관망론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원칙의 명확성이다. 자국 선박 공격과 국제 항행 질서 훼손은 용납할 수 없으며, 동맹에 기반한 미국과 공조는 여전히 한국 외교의 핵심 축이라는 점 정도는 분명히 해야 한다. 전략적 모호성이 길어지게 되면 이는 신중함이 아니라 결국 ‘의지 없음’으로 해석될 수 있다.
<원문출처>
경상매일신문 https://www.ksmnews.co.kr/news/view.php?idx=606154(새 창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