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공연예술학부 2026학년도 1학기 산업체 연계형 캡스톤 디자인 학습자 주도형 창작 프로젝트 세 번째 공연 성료···작·연출 최윤지 학우 인터뷰

서경대학교 공연예술학부가 2026학년도 1학기 산업체 연계형 캡스톤 디자인 ‘학습자 주도형 창작 프로젝트’의 세 번째 공연 <Blank>를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4월 10일 오후 6시와 11일 오후 4시, 양일간 서경대학교 북악관 8층 북악홀에서 진행됐으며, 예매는 4월 3일(금) 정오부터 공연 당일까지 이어졌다.


<Blank>는 공연예술학부 연출 전공 24기 최윤지 학우가 작·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공백’과 그 관계를 둘러싼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극은 ‘가족 대행 서비스’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가까운 사이일수록 전하지 못했던 감정과 말의 공백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무대에는 연기 전공 심민섭, 이상훈, 이지우, 이민석 학우가 출연해 각자의 개성과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배우들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섬세한 감정선과 호흡을 유지하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렸고, 장면마다 긴장감과 여운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결과물 발표를 넘어, 학생들이 창작의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하며 예술적 역량을 확장하는 데 의미를 더했다.
한편, 〈Blank〉의 작·연출을 맡아 공연을 기획하고 이끈 공연예술학부 연출 전공 24기 최윤지 학우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인터뷰: 〈Blank〉 작·연출 최윤지 학우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학습자 주도형 프로젝트 <Blank>의 작·연출을 맡은 연출 전공 24기 최윤지입니다.
– <Blank>는 어떤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연극 <Blank>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생긴 공백을 중심으로, 그 틈에 ‘가족 대행 서비스’가 개입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이 공간은 소파, 식탁, 냉장고 등 가족의 흔적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지만, 정작 사람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곳입니다.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지만, 그 정돈됨이 오히려 외로움을 더욱 부각시키는 공간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패밀리 케어 서비스’ 광고를 보게 되고, 이끌리듯 신청하게 됩니다. 이후 아들 대행과 어머니 대행이 집에 들어와 함께 식사를 하고, 생일을 챙기며, 일상의 돌봄을 제공합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가족’이라는 틀 안에 다시 위치시키며 결핍을 채워줍니다.
하지만 실제 아들과의 관계는 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걱정하지만, 그 표현은 다정함보다는 의무나 확인처럼 전달됩니다. 결국 아들은 대행 가족과 아버지가 함께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 쌓여 있던 감정이 폭발합니다.
이 작품은 가족을 대체할 수 있는가를 묻기보다, 관계가 남아 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말을 했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작품입니다.
–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관계가 아직 남아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완전히 포기한 관계가 아닙니다. 문제는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전달되는 방식이 계속 어긋난다는 점입니다.
아들은 현실적인 방식으로 아버지를 챙기지만, 아버지가 원했던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함께 있어주는 태도였는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아버지 역시 외로움과 서운함을 직접 표현하지 못한 채 대행 가족을 들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가까운 관계일수록 왜 표현을 미루는지, 왜 필요한 말은 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 연출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가짜 가족의 자연스러운 다정함’과 ‘진짜 가족의 어색한 불편함’을 대비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대행 가족은 아버지에게 필요한 말을 정확하게 해줍니다. 아버지가 외롭지 않게 말을 걸고, 식사를 챙기고, 생일을 축하하고, 작은 루틴까지 만들어줍니다. 그 장면들은 관객이 보기에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아버지가 왜 그 관계에 기대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진짜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있는 장면은 일부러 조금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둘은 서로를 걱정하지만, 말이 부드럽게 오가지 않습니다. 아들의 걱정은 잔소리처럼 들리고, 아버지의 침묵은 거절처럼 보입니다. 두 사람 모두 마음이 없는 게 아닌데, 표현 방식이 계속 어긋납니다.
이 대비가 선명해야 관객이 단순히 “아버지가 잘못했다” 혹은 “아들이 잘못했다”라고 판단하지 않고, 두 사람 사이에 남아 있던 감정의 복잡함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출적으로도 집이라는 공간을 중요하게 봤습니다. 이 집은 가족이 살았던 공간이지만, 지금은 너무 정돈되어 있고 조용합니다. 저는 그 집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생긴 공백을 보여주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 준비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했나요?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이 작품이 어느 한쪽만의 잘못으로 보이면 안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아들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들입니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단순히 아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하지 못했던 외로움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그 걱정이 아버지에게는 다정함보다 간섭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건, 인물들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대립 장면은 감정이 크게 터지는 장면이라 조심스러웠습니다. 아들이 화를 내는 장면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왜 밀려났는가”라는 상처가 있어야 했고,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 역시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나도 편하고 싶었다”라는 외로움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과 이 인물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그 말 안에 어떤 서운함과 미안함, 애정이 섞여 있는지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단순히 싸우는 장면이 아니라, 두 사람이 처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는 장면으로 접근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인물들이 쉽게 판단되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를 붙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보이길 바랐습니다.
– 공연을 본 관객들의 반응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은 “가족 대행 서비스라는 설정은 낯설었는데, 결국 너무 현실적인 가족 이야기처럼 느껴졌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소재의 특이함만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가족 대행 서비스는 분명 낯선 장치이지만, 그 장치를 통해 드러나는 감정은 굉장히 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오히려 다정하게 말하지 못하는 순간, 걱정하면서도 상대를 상처 주는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는 순간, 서운하지만 먼저 말하지 못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가 서비스를 해지하고, 아들에게 물 잔을 건네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는 피드백도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는 거창한 사과나 완전한 화해가 없습니다. 대신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주 작게 태도를 바꾸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그 어색하고 투박한 행동이 오히려 두 사람 다운 해소처럼 느껴지기를 바랐습니다.
– 공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는데,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계속 장면을 고치고, 배우들과 이야기하고, “이 인물이 왜 지금 이런 말을 했을까”, “이 말이 정말 분노에서 나온 걸까, 아니면 서운함에서 나온 걸까”를 같이 고민했는데, 그 과정이 끝났다는 게 생각보다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결과물로서의 공연도 중요하지만, 그 공연에 도달하기까지 배우들과 함께 인물을 이해하고, 장면을 발견하고, 조금씩 무언가를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이번 작업을 통해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Blank>는 저에게 관계 안의 침묵을 들여다보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겉으로는 가족 대행 서비스라는 소재가 먼저 보이지만, 제가 더 집중하고 싶었던 것은 그 서비스가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관계의 틈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완전히 포기한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아직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 어렵고 불편한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작품을 더 발전시킨다면, 두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서로에게 서툴러졌는지, 어떤 말들이 생략되었고 어떤 감정들이 쌓였는지를 더 세밀하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원래 작품을 만들 때 인물의 선택과 윤리적 공백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어떤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그 선택이 정말 잘못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지, 혹은 그 안에 이해할 수밖에 없는 외로움이나 결핍이 있는지를 계속 따라가고 싶어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아버지가 가족 대행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결과만 보면 비판받을 수 있지만, 저는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감정과 태도를 더 깊이 보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는 이 부분을 더 발전시켜서, 관객이 단순히 “누가 잘못했다”가 아니라 “나는 관계가 아직 남아 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를 질문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또한 연출적으로는 ‘가짜 가족이 주는 편안함’과 ‘진짜 가족이 주는 불편함’의 대비를 더 정교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대행 가족이 등장하는 장면은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이상하고, 진짜 아들과 아버지가 마주하는 장면은 불편하지만 그 안에 분명한 애정이 남아 있는 방식으로요.
저는 앞으로도 이런 미세한 감정의 결, 말하지 못한 마음, 관계 안에서 생기는 균열을 무대 위에서 탐구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이번 공연은 그 방향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 작업이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을 함께한 배우분들, 스태프, 그리고 지도해 주신 교수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이번 공연은 함께한 모든 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글을 읽고, 믿고, 무대 위에 세워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굉장히 개인적인 글을 읽어주시고, 그 안의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주신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안에서 출발한 이야기였지만, 대본을 드린 이후부터는 이 인물들이 더 이상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인물들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우분들은 저의 첫 번째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되어주셨습니다. 제가 글로만 상상하던 인물들이 배우분들을 통해 실제로 숨 쉬고, 밥을 먹고, 침묵하고, 화내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 작품이 비로소 제 손을 떠나 무대 위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물들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각자의 외로움과 서운함, 미안함을 끝까지 이해하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기억은 제가 앞으로 작업을 계속해나가는 동안에도 오래, 아마 평생 간직하고 살아갈 것 같습니다.
집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와 공백을 담아내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그 한 가정을 무대 위에 만들어내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애써주신 스태프분들이 있었기에 이 공연이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무대, 조명과 소리, 공연의 흐름을 지켜준 모든 손길들이 모여서 연극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연을 지탱해 주신 스태프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도해 주신 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연습 참관해 주시고, 좋은 피드백과 말씀을 많이 해주신 덕분에 작업을 이어가는 데 큰 힘을 얻었습니다. 제가 확신하지 못하던 순간마다 작품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자극제가 되어주셨고, 동시에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셨습니다. 작품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에게는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로 남아 있는 작업입니다. 함께한 분들은 어떠셨을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이 작품을 준비한 시간이 오래도록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제가 쓴 개인적인 이야기가 함께 읽히고, 함께 고민되고, 함께 완성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이 공연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홍보실=최가은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