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칼럼:동맹도 국익도 해칠 ‘민감정보’ 노출[포럼]

기자에게 취재원 보호는 생명선과도 같다. 이는 단순한 직업윤리를 넘어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은 때로 특종을 포기하면서까지 취재원을 지킨다. 이러한 원칙은 정보활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보기관에서 출처 보호는 곧 국가안보와 직결된다.
정보활동은 흔히 ‘창과 방패의 싸움’으로 비유된다. 하지만 양자는 맞물려 있다. 정보를 수집하는 ‘창’은 휴민트(HUMINT·인간정보)와 테킨트(TECHINT·기술정보)로 나뉜다. 특히 북한과 같은 폐쇄 체제에서는 그 난도(難度)가 극단으로 높아진다. 외부 접근이 거의 차단된 환경에서 신뢰할 수 있는 휴민트를 부식(扶植)하는 일은 오랜 시간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작업이다. 테킨트 또한 제한된 신호와 환경에서 고도의 기술과 정밀 분석을 요구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08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건강 이상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던 당시, ‘스스로 양치질을 할 정도로 회복됐다’는 구체적인 첩보가 외부로 흘러나왔다. 단순한 건강상태 설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북한 내부에 접근 가능한 고급 휴민트의 존재를 시사하는 신호였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확보한 ‘창’도 단 한 번의 노출로 무력화될 수 있다. 휴민트는 출처가 드러나는 순간 정보망이 무너지고, 협력자는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테킨트 역시 신호정보 수집 방식과 감청 범위, 위성 감시 능력이 드러나면 상대는 즉시로 통신 체계를 바꾸거나 위장·기만 전술을 가동한다. 그 결과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구축한 정보 자산은 순식간에 효용을 잃기 때문에 노출 여부 판단 기준은 엄격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한 핵 관련 “구성에서 90% 우라늄 농축”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원칙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미국이 이를 민감정보 유출로 규정해 정보 공유를 일부 중단하고,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대북 정보 유출’이라며 항의했다는 보도는 사안의 민감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 장관은 이에 대해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및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 내용이라고 해명했지만, 여기에는 평안북도 ‘구성(龜城市)’이 적시되거나 ‘90% 농축’은 언급되지 않은 데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도 그런 보고서를 쓴 적이 없다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외려 확산되고 있다. 향후 대북 협상에 쓸 수 있는 비밀 카드를 미리 공개해 버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결국 정보의 경쟁력은 ‘창’을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느냐 못지않게, 그것을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하고 유지하느냐에 좌우된다. 특히 한국은 테킨트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 의존도가 높은 구조인 만큼, 정보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상호 신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난 2월 개봉된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는 한 정보 요원이 자신의 첩보원을 지키기 위해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는 모습을 통해 정보 세계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첨단 수단이 아무리 정교해도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정보망은 무너지고, 축적된 자산은 한순간에 무력화된다. 그리고 그 여파는 단순한 정보 손실을 넘어, 동맹의 신뢰까지 뒤흔드는 치명적 파장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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