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칼럼: [임성은의 정책과 혁신] 〈29〉케데헌, 남의 손으로 만들고 내것으로 도취되나?

케데헌 열풍이 거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라는 작품은 K팝을 ‘데몬’으로 상징화하고 이를 ‘헌팅’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담고 있다. 작품의 내용이 반드시 긍정적인 의미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서울 방문 및 굿즈 판매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앙정부나 서울시 등 지자체에서도 ‘케데헌’의 흥행을 매우 고무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실제로 효과만 놓고 보면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현상을 단순히 ‘좋은 일’로만 받아들이기보다는, 이것이 과연 우리의 정책적 성과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작품이 우리나라 제작사가 아닌 외국 자본, 특히 소니가 주도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단지 그 작품의 감독이 한국 출신으로 자신의 추억을 담고, 작곡과 노래를 맡은 한국인이 성과를 내었다는 것에 도취되어서는 곤란하다.
필자는 ‘꼬마버스 타요’를 제안하고, 계약 과정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디지털콘텐츠 산업에 관해 몇 가지 문제와 해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타요는 아이템의 기획을 제안했을 때 민간업체가 가능성을 오히려 낮게 봤다. 공중파 방송과 먼저 협력해 방영확정과 제작 지원을 동시에 하도록 만든 것이 성공 요인이다. 계약협상 과정에서 민간이 가장 꺼려 한 것은 순환보직 공무원이 전문성 없이 사업의 본질을 엎는 수준까지 관여하는 것이었다. 제작기간동안은 철저히 자율성을 부여했다.
우리나라도 디지털 콘텐츠와 영화 산업 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제작 시스템에서는 이와 같은 글로벌 성공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을 냉정히 분석해야 한다. 애니메이션만 하더라도 애플이 관장하는 픽사의 범주에 도전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제조업 분야가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한 것과 대조적이다. 총론적으로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나눠먹기식 예산 지원’이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 부처로도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중소기업부, 산업부에 서울시 외 지방정부에 각기 산하기관까지 예산지원기관은 너무나 많은 것에 비하면 통합과 조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둘째는,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낸 영역에 민간투자로 이어지는 체계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오랫동안 예산으로 ‘모태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공모 형태로 지원해 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체로 영세한 소규모 업체의 난립을 초래했을 뿐,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는 이번 영화의 감독과 음악감독 등 인력 또한 정부나 국내 기업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곧 우리나라의 인재 발굴 및 육성 체계가 해외보다 뒤처져 있음을 보여준다. 지원 규모의 부족, 체계적 교육 인프라의 미비, 그리고 기획력 부재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결과가 좋으면 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을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짚는 이유는, 그동안의 지원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사한 문제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케데헌’의 감독이나 음악감독, 작곡가 같은 인재들을 외국 기업이 먼저 발굴하고 육성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세계 문화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중심을 놓칠 수밖에 없다. 아니, 설령 잠시 인기를 얻더라도 그 성과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정부 예산은 복지적 기능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산업을 육성하고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데 활용돼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前 서울기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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